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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면의 벽

어느 보험사 직원의 일기

by 구의동 에밀리

사람이 죽는 방법은 다양했다. 굴삭기 바퀴에 몸이 빨려들어가 죽었다. 커다란 바께쓰에 인부 세 명을 담아서 굴삭기에 체인을 걸고 올리다 떨어뜨려 죽었다. 참. 두 명은 죽고 한 명은 살았다. 그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도 다쳤다. 진료일지를 살펴봤다.


... 자는 도중에 다리가 서서히 들어올려졌다가 푹 떨어짐. 악몽을 꾸다 깸. ...
... 높은 데서 떨어지는 꿈을 자꾸 꾼다고 함. 동료들이 꿈에서 보인다고 ...
... 악몽은 이제 잘 안 꾼다고 함. ...


인지능력 측정 관 서류도 검토했다.


... 어눌한 말투. ...


기억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산재 서류가 매일 쌓였다. 사고 신고가 끊이지 않았다. 사고일지와 시체검안서가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에구, 쯧쯧쯧...


클레임 파일에는 손해사정보고서를 비롯해서 시체검안서, 경위서, 소견서 등등이 묶여 있었다. 맨 위에는 언제나 합의서와 최종보고서가 철해졌다. 사망건 합의서에는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수였다.


합의서의 어투는 목숨값을 주고받고 있음을 명시했다. 법적 효력을 띠고 있는 문구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의 남편은 죽었다, 그 사실을 너무도 훤히 보이게 드러냈다.


"난 사망사고면은 항상 기도를 먼저 하고 결재를 해."


퇴직금이건 배상금이건 사람이 돈을 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죽거나, 다치거나, 죽게 생겼거나.


성수역을 지났다. 건대입구를 지났다. 일어서서 구의역에 내려볼 시간이었다. 저녁 일곱 시가 넘었다. 어제그제 먹은 커피 때문인지 약간의 구토증이 허기와 뒤섞여 느껴졌다. 사람이 죽은 장소에 가까워지면서도 배고픔은 느껴졌다. 열아홉 살의 앳된 아이를 상상했다. 그는 더 이상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 그의 육신이 남아 있기는 할까.


문이 열렸다. 사고 지점이 앞쪽일까 뒤쪽일까. 두리번거리다 앞쪽은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고 열차 꼬리로 발을 옮겼다. 구두가 또각거렸다. 운동화와 달리 구두는 발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뒤쪽으로 다가갈수록 그 아픈 구두마저도 신었다는 사실이 미안해져 맨발로 고인을 영접하러 가야 할 것 같았다.


저쪽에, 스크린도어 근처 바닥에, 물건들이 놓여있는 모습이 점점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회색의 희끄무레한 저 어떤 덩어리. 분명 저 위치인가보다, 하는 마음이 들면서 점차 이승의 출구로 걸어갔다.


사고지점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던데...


포스트잇은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벽을 보러 왔으나, 나는 조그만 사람이 되어 경건하고 슬픈 방에 들어온 듯 했다. 포스트잇은 사방에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떡해...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그 젊은이의 입장에 들어가려 노력했다. 이 열차가 그에게는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졌으리라. 자칫 치이면 죽을 수 있는, 그러나 맞서야만 밥을 벌 수 있는.


말라버린 국화와 아직 마르지 않은 국화가 섞이어 바닥과 벽에 더미로 쌓이고 붙어 있었다. 코팅된 만 원 지폐도 벽에 붙어 있었다.


"라면 먹지 말고 밥 드세요 ㅠㅠ"


빵집에서 살 수 있을 법한 생일 고깔 모자도 두 개 붙어 있었다. Happy birthday가 처량해서 더욱 울었다.


... 구조적인 ...
... 돈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


포스트잇들은 외치지 않아 나는 위압감을 느꼈다. 그들은 각자 정면을 향해 말을 가슴에 표지로 걸어 내놓았다. 하나하나가 흰 데드마스크처럼 보였다. 세월호 희생자 합동 장례식장이 겹쳐져 보였다. 그 많은 영정들.


애들이 자꾸 죽었다.


'무슨 상관이야...'
'태평한 소리. 벌어먹이려면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할 것 아니야...'


그 많은 시체검안서, 진단서. 나는 아름다운 모습만 본 것인지, 현장에 나가보면 악질로 몰아갈 사람들은 없었다. 다리가 이게 여기까지밖에 안 펴진다니까요... 팔이 이렇게 됐어. 활선전공으로 일하다 감전되어 팔다리가 상한 사람도 있었다. 피부가 아직 아파서 아내가 대신 서류에 글을 써주고 팩스를 보내주러 이웃집에 다녀왔다.


이른 새벽에 지하철을 타면 익숙한 차림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지하철에 앉아 갔다. 공사 현장에서 꼭 갖춰야 하는 보호용 신발. 그런 신발은 뭉툭해서 한눈에 알 수 있다.

장화를 신고 작업해야 하는 하수도 공사는 보호용 신발을 신을 수가 없다.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기 때문에 한번에 몸을 쑥 넣을 비옷같은 옷을 멜빵처럼 올려 입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동료 두어 명과 함께 철제 뚜껑을 들어 옮겨서 닫는데, 하나 둘 셋이 맞지 못해서 모서리가 발을 찧었다. 무거운 뚜껑은 발가락을 앗아갔다. 실사를 위해 카페에서 만난 그는 양말을 벗어보였다.


"돈도 돈인데, 이게 나아야 일을 나가는데... 아파서 이걸..."
"에고... 원래 이렇게 다치면 통증은 계속 있어요. 그러다 낫기도 하고, 계속 아프기도 하고."


바퀴에 돌이 끼어 튕겨나가 맞기도 했다. 겨울에는 얼어 있어서 단단한 줄만 알고 밟고 다니던 판자가, 날이 풀려서 폭삭 무너져 추락하기도 했다. 위태로운 환경에, 누군가는 일자리를 제공받아 간다.


사람이 일하다 죽는 일은 예전에도 지금도 빈번했다. 분명 위험할 것 같은데 챙기지 않아서, 인건비 줄이려면 어쩔 수 없어서, 다른 데서도 보통 그렇게만 갖춰서... 야근하다 죽고, 기계에 끼어 죽고, 열차에 치여 죽고.


죽은 그를 위해, 하느님과 천국같은 그런 존재가 있기를 처음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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