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의 계약

by 구의동 에밀리

자녀랑 안 친한 분들이 있다.

어느 정도면 친하다고 할 수 있는지 정확한 기준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예컨대 이런 경우들이 더러 있다.

“아빠 이제 다음 달부터 육아휴직 들어가.”

“싫어!”

“왜 싫어?”

“아빠가 집에 계속 있는 거 싫어!”

반면에 어떤 분들은 자신 있게 얘기하신다.

“저는 딸이랑 친하거든요.”

“따님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이제 다 컸죠, 뭐.”

“와, 그런데도 아직 친하게 지내시는 거예요? 좋으시겠어요.”

나는 이상한 믿음을 몇 가지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는 ‘요정 계약설’도 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생각해 놓고 혼자 그럴싸하다고 생각해서 믿고 있는 가설이다.

사람들은 보통 ‘부모는 선택할 수 없다’라고 하는데, 사실 부모뿐 아니라 자식도 선택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사실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선택했다고 믿는다.

임신을 하면 그전까지는 세상에 없던 영혼이 탄생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 영혼은 어디서 왔을까?

임신이 운명 속에 들어오게 되면, 그 운명을 지고 있는 부모를 발신인으로 하여서 인간 세계로의 초청장이 요정 세계로 간다. 그러면 인간 세계에 관심이 있던 요정 중 초청장이 마음에 든 요정이 ‘부모-자식’ 계약에 응하면서 이쪽으로 넘어오게 된다.

이 계약은 양쪽의 세계를 거쳐서 이루어져야 하므로 물리적 세상에서는 할 수가 없고 영혼의 형태로만 서로 만나서 진행된다. 따라서 유일한 통로이자 중간 지대인 ‘꿈’의 세계에서 양측의 영혼이 만나서 계약이 성사된다. 이때의 기억이 부모인 당사자들 혹은 꿈속에서 지나치던 주변인들에게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것이 태몽이다.

그 후에는 요정이 세계를 넘어가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때문에 몸을 매우 가볍게 해야 한다. 이때 요정 세계에서의 기억은 짐이 되기 때문에 모두 내려놓고 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도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비록 다 까먹긴 했어도 부모-자식 계약에 응해서 이 세계로 초대된 사람들인 셈이다. 이는 아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부모는 본인들이 자의로 요정에게 인간 세계로 초청도 하고 계약도 한 사람들인 셈이다.

이렇게 세계를 넘어오라고까지 초대했으면서 자녀들과 데면데면할 정도로 무신경하다면, 그건 좀 문제가 있는 호스트가 아닐까? 다른 초대장들도 마다하고 본인을 선택해 준 요정인데.


+) 그렇다면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부부는 초대장이 다 거절되고 있는 걸까?

오히려 정반대다. 그건 어떤 요정이 초대장을 꼭 쥐고서 본인이 가겠다고 강력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요정 세계에서도 너무 잘 지내온 기억이 있기 때문에 몸을 가볍게 하지 못 해서 시간이 걸리는 중이다.


++) 요정은 단 한 번만 인간 세계로 넘어올 수 있을까?인간 세계로 넘어온 요정은 죽고 나면 다시 요정 세계로 넘어간다. 그러나 초대에는 여러 번 응할 수 있기 때문에 계약도 여러 번 맺을 수 있다. 초대자가 무척 마음에 드는 경우, 같은 부모와 여러 번 계약을 맺는 요정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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