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주 2일
뭐가 더 중요한 건지 판단하는 게 어려웠다.
산부인과에서는 당장 지금부터라도 회사를 그만 나가야 될 것 같다고 하셨다. 그게 지난 주 금요일이었다.
금요일에 퇴근하고 병원을 간 건데, 그게 마지막 출근이 되었다니. 나는 아직 다른 분들에게 인수인계도 제대로 못한 것 같았고,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 나오는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 어쩌지 싶었다. 적어도 한 번은 출근을 해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혹시나 싶어서 회사에 재택근무가 가능할지 문의를 했다. 재택근무가 아니면 바로 지금부터 휴직 혹은 휴가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사팀에서는 이런 사유로 재택근무 하는 케이스는 없다는 답변을 주었다. 부장님께서도 건강을 위해서는 괜히 재택근무 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는 휴식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해 주셨다.
그래도 한가지 다행이었던 점은 남편이 곁에 있어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건 간에, 우왕좌왕하면 가장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곤 했다. 회사에 나갈 거면 나가고, 집에 머무를 거면 머물러야지, 이렇게 생각했다가 또 저렇게도 생각했다가 하면 그게 오히려 회사 사람들에게 더 혼란을 줄 게 뻔했다.
산부인과에서 같이 진료를 보고 나오는 길에, 남편이 내게 ‘회사는 그만 나가는 게 맞긴 하겠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실 의사 선생님의 소견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 뿐이었지만, 나 혼자였으면 ‘그래도 정말 회사를 이대로 그만 나가는 게 맞을까?’하고 갈팡질팡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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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다.
이러나 저러나 욕을 할 사람은 욕을 한다는 게 나의 믿음이었다. 심지어 세계 평화를 외친다고 해도 욕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아프리카에 수도 설치 봉사를 하는 유튜버의 채널에마저 악성댓글이 달리는 모습을 목격하자 그 믿음이 확고해졌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건강상의 이유로 휴가를 쓰고 휴직계를 내는 것을 두고서도 욕할 사람은 욕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무책임하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얼굴도 비추지 않고 휴직을 들어가느냐는 말까지 눈에 선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의사 선생님이, 그러니까 전문 의료인이 “지금 상태로는 절반 확률로 조산을 할 수 있으며, 조산을 하게 되면 아기의 건강이 위험해질 수 있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비록 세상에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의 사람이고 생명체이지 않은가?
지난번에 입체 초음파를 봤는데 이미 눈코입이 다 만들어져 있었다. 하품하는 모습도 봤고, 지금은 머리카락도 자라고 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내 배 속에서 이따금 발로 차거나 딸꾹질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은 기지개를 켜는지 배가 양옆으로 쭉 늘어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왠지 나는 이미 알고 지내던 사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작은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하는데, 회사일이 문제인가?
아마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이런 일로 임산부를 비난하지는 않겠거니, 그런 생각을 할 뿐이다. 얼간이들의 말에 너무 휘둘리거나 마음 상하지 말아야지.부모가 된다는 건 보기보다 더 마음을 굳게 먹어야 되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