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주 3일
# 튼튼해도 어려운 것, 임신과 출산
세상에는 뜻대로 안 되는 일들이 몇 가지 했는데, 그중 하나가 ‘임신과 출산’인 것 같다.
나는 평소에 튼튼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자궁이 떠받치는 힘 만큼은 엄청 약한가 보다. 솔직히 맨 처음 자궁경부 길이를 잰 이유도, ‘3~4cm는 나오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하는 생각으로 의사 선생님께 요청드린 것이었다. 그래서 최저 기준인 2.5cm 이하로 나올 줄은 몰랐기에, 결과를 듣고 내 귀를 의심했었다.
보통 이맘때(28주 이후)면 2주마다 한 번 산부인과에 정기 검진을 가는데, 나는 일주일에 최소 한 번씩은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만큼 경과를 관찰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 와식생활의 끝판왕
새해 연휴 사흘을 포함해서 오늘까지 집에서 줄곧 누워만 지냈다. 이렇게 거의 일주일 동안 와식생활만 하는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밥이며 빨래며 집안일은 남편과 친정 엄마에게 부탁하고 나는 정말로 ‘누워만’ 있었다.
처음에는 멀뚱멀뚱 지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데스크(베드?) 세팅을 부랴부랴 했다. 태블릿 거치대도 찾아 놓고, 침대 옆에는 책꽂이와 트롤리를 가져다 두어서 손만 뻗으면 뭐든 집을 수 있도록 배치했다.
특히 블로그 포스팅 같은 것을 할 때에는 타이핑을 하기가 굉장히 불편해서 궁리를 많이 했다. 배 위에 쿠션을 얹어서 키보드를 타이핑하는 것도 오랫동안 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다행히 요즘에는 음성 인식 기능이 꽤 괜찮아서, 받아쓰기를 스마트폰과 태블릿에게 맡겼다. 그래서 한 문장씩 받아쓰기를 시키고 오탈자를 조금 수정하는 방식으로 포스팅도 올리고 카카오톡도 주고받았다. 흡사 내가 스티븐 호킹 박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 늘어나라 경부 길이
그렇게 내도록 누워서만 지냈는데도, 이번에 경부 길이를 다시 보러 갔는데 전혀 늘어나지 않아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보면, 1~2주 정도 누워서 지냈더니 1~2cm 정도 늘어났더라는 케이스가 종종 있었다.
분명 나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듣기로는 “이렇게 펀넬링이 진행되면 다시 돌아오게 할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라고 설명을 받았었다. 그런데도 늘어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까, 원리가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희망을 좀 가졌었다. 참고로 펀넬링이라고 하면 자궁경부가 깔때기 모양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깔때기 모양이 아니었다가 점점 입구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 긍정 마인드로 버티기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자면, 어쨌든 회사를 나가지 않음으로써 완전히 확 짧아지는 일은 방지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회사를 다니면서는 불안한 마음이 컸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있다 보면, 아랫배에 점점 하중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미리부터 짐을 쌌다. 단지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이유에서가 아니라, 진짜로 건강이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가끔 복도나 화장실에서 누군가를 마주쳐서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른 동료의 자리로 걸어가는 것도, 늘 그렇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려면 자궁경부가 무엇인지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했는데, 상상만 해도 정말 구차했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침대에 누워서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만 취하면 되니까. 회사에 재택근무가 가능할지 문의했을 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어서, 그 당시에는 이대로 바로 휴가와 휴직을 써도 괜찮을까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와서 보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근무시간의 제약이 사라졌기에 병원도 시간 되는 대로 다녀오면 되고, 회사 업무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누워있을 때도 노트북을 보는 자세를 꼭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그 새 체력이 떨어졌는지, 오늘은 병원 다녀오느라 외출을 2시간 밖에 안 했는데도 집에 와서 낮잠을 2시간 잤다. 외출시간만큼 낮잠시간이 필요하다니. 그나저나 꿈속에서는 수액을 한 번 더 맞다가, 뭔가가 잘못되었는지 피가 수액 통으로 잘못 올라가는 꿈을 꿨다.
그래도 회사는 다닐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다니면서 돈도 바짝 벌었으니, 지금부터는 이대로 할 수 있는 데까지 버텨 보자. 아자아자!
# 최근의 길이 변화
12/2 (26주 5일): 2.4cm
12/13 (28주 2일): 2.5cm (2.4~2.6cm)
12/20 (29주 2일): 2.0cm (최소 1.7cm)
12/29 (30주 4일): 1.3cm (1.03~1.53cm)
12/31 (30주 6일): 1.7cm1/4 (31주 3일): 1.2cm (대체로 1.3~1.7cm이나, 최소 1.2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