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주 2일
자궁경부 길이가 짧아서 눕눕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회사도 나가지 않고 집 밖으로는 병원 정도만 다녀오고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되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 날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그렇지는 않다.
물론 카페를 다녀오거나 외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얼핏얼핏 들긴 하지만, ‘이런 사소한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다니!’ 하는 식의 억울함은 들지 않는다.
마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는 학생의 마음이 된 것 같다. 벚꽃도 구경하고 맥주도 마시면 당연히 좋겠지. 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확연하게 더 눈에 들어오고 있으니,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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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제는 초조함보다는 하루하루를 덤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본 게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아무래도 임신 전에는 내가 조산 위험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케이스에 대해서는 미리 알아본 바가 없었다. 그리고 집에 있다 보니 시간도 널널한 만큼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경험담을 찾아봤다.
맨 처음 발견한 후기는 베이비빌리 앱에서 어떤 분이 29주차인데 출산을 했다는 후기였다. 2024년 3월에 출산 예정인 사람들의 모임이었기에 그분의 출산 후기가 가장 빠른 후기였다. 당연히 본인이 원해서 그때 출산한 것은 아니고, 임신중독증처럼 심한 증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산을 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아기는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갔지만, 다행히 큰 이상 없이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해당 글에 달린 댓글들도 모두 작성자를 응원하고 각자가 들었던 혹은 겪었던 조산 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이른둥이가 지금은 초등학생이 되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등의 희망적인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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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글을 더 찾아보니 조산 위험과 싸운 산모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았다.
어떤 분은 무려 24주차쯤에 자궁경부 길이가 짧아지고 자궁 수축도 동반되어서 입원을 했다고 했다. 24주차면 너무 이른 시기이기 때문에 그 당시 의사 선생님도 “아, 지금 나오면 안 되는데……” 하면서 긴장하셨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작성자 분은 “만약 지금 낳게 되면 유산인가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의사 선생님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24주차 이전까지는 법적으로 아기보다는 산모의 건강과 생명을 위주로 치료할 수밖에 없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 말을 듣고 작성자분도, 남편분도 울었다고 했다. 그걸 보던 나도 울컥했고 말이다.
결국 작성자 분은 28주차에 출산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37주차 이전에 출산을 하게 되면 조산이라고 하는데, 30주차도 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굉장히 위험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심지어 그날은 출산을 하러 병원에 갔던 게 아니라, 자궁 수축이 와서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출산까지 이어졌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글의 작성 시점은 무려 2년 전이었고, 얼마 전 포스팅을 보니 그 아기는 건강하게 자라서 두 돌을 맞았다. 해피엔딩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후후, 이제 평범하게 부모 속을 썩이는 어린이로 거듭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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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과 관련된 후기는 그 밖에도 정말 많았다.
대부분 임신 중기 때 자궁경부 길이나 자궁 수축의 문제가 발견되었던 분들이 많았다. 18주차에서 24주차 사이에 문제가 발견되는 식이었다. 어쩌다가 자궁경부 길이를 쟀더니 2.5cm 미만이었더라, 하는 게 공통적인 말이었다.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자궁경부가 짧아졌는지는 알아채기 정말 힘들다는 게 보편적인 의학 상식 같았다. 길이가 그렇게 중요한 요소인데다 본인이 알 수도 없다면 임신 15주차부터 5주마다 한 번씩 재도록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우연히 발견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조금 의아하기는 하다.
어쨌든 후기들을 찾아보니 조산이라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흔한 일이었고, 그만큼 주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기들을 케어하는 방면에 있어서 의학 기술도 엄청난 것 같았다. 36주차부터는 그냥 낳아도 어지간하면 괜찮은 모양이었고, 33~35주차 정도면 그래도 안정권이라고 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27주차에 낳은 아이도 신생아 중환자실과 인큐베이터를 오가면서 건강하게 자랐다는 케이스도 더러 있었다. 어쩌면 해피엔딩 이었기 때문에 블로그 포스팅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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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래서 조산기가 있는 산모들은 주수 앞에 3자 붙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33주차에 접어들었으니, 너무 초조하게 걱정하기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 봤다. 지난주에 병원을 방문했을 때도, 만약 내 상태가 굉장히 위중했더라면 아마 의사 선생님께서 나를 순순히 집에 보내시지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진짜 위험해 보였으면 그 즉시 입원을 시키셨겠거니.
또 이러나 저러나 나는 걱정을 하든지 속 편하게 지내든지 둘 중 하나 밖에 선택지가 없기도 하다. 어차피 결과는 비슷할 텐데, 그렇다면 마음 편하게 먹고 지내는 게 더 이득 아닐까? 심지어 걱정을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여서 예후가 안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자궁경부 길이가 짧아서 임신 후기 생활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나에게 쉬어가라고 주는 기회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삭막한 회사 생활, 너무 붙들고 있지 말고 좀 일찍 정리해서 쉬라고. 그래서 요즘 집안일도 그렇고 밥도 다 친정 엄마가 해주고 계신데, 덕분에 정말 잘 쉬고 있다. 결론은 엄마한테 감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