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주 2일
너무너무 걱정 가득했던 임신기간, 이제 끝!
38주 2일에 유도분만으로 아이를 만났다.
글을 쓰는 지금은 조리원 들어와서 2일차. 겨우 정신을 차려서 분만 당일의 기록을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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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제일산부인과에서 평소 진료해주시던 원장 선생님을 통해, 38주 2일로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다. 초음파로 본 아이는 2.8kg, 머리 사이즈도 9.2cm 정도라 자연분만하기 어려운 크기도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여러 후기를 보니, 체중이 4kg가 넘는다거나 머리 둘레가 10cm 이상이면 좀 어려울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침 7시까지 병원에 출산가방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외래는 9시부터 시작이지만 분만실은 24시간이라, 남편이랑 출입문 호출벨을 눌렀다. 그러자 잠겨있던 병원 정문이 열려서 들어갈 수 있었다. 갈 때는 친정 부모님께서 차를 태워다 주셨다.
가족분만실로 들어가서 원피스 병원복으로 갈아입었다. 남편은 바깥에서 여러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짐을 입원실로 옮겼다. 그 동안 나는 누워서 태동검사기를 부착하고 팔에 수액 바늘을 꽂았다.
내진을 해보니 자궁문이 이미 4cm 열려 있다고 하셨다. 수축도 잡히고 있었다. 나는 조산기 때문에 늘 이런 상태로 살고 있었는데, 촉진제 안 넣고도 벌써 자궁문 열리는 게 진행되고 있었다니 남편 말대로 조산 위기가 이 때만큼은 전화위복이었다.
수액을 맞으며 내진을 몇 번 하다가, 9시반에 무통주사를 먼저 놓아주셨다. 나는 눕눕하느라 고생한 임산부이기 때문에 분만 시라도 최대한 고생 안하게끔 해주시겠다고 간호사 분께서 말씀해주셨는데, 그게 굉장히 감사하게 느껴졌다.10분 후에는 산소마스크를 꼈고, 또 10분 후에는 촉진제 1단계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의사/간호사 선생님들이 다녀가시면서 내진과 수축을 보셨고, 굉장히 스테이블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2단계까지만 촉진제를 넣을 것이라고 하셨다.
무통빨이 잘 들어서 진통은 못 느꼈다. 하지만 난데없이 허벅지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때때로 발도 차가웠다. 남편이 손을 잡아주고 호흡도 지도해주고, 발도 데워주었다. 그랬더니 몸이 잠깐씩이나마 차분해졌다. 유튜브에서 미리 호흡법을 남편이랑 같이 보면서 연습했던 것이 효과가 있었다.
11시쯤 내진해보니 8cm 정도 열려 있었다. 이때부터 슬슬 힘주기를 시작했다. 힘주기라고 하면 그냥 내가 배에 힘을 주는 정도인 줄 알았는데, 자세도 이리저리 바꿔보고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배를 눌러 도움을 주셨다. 몸에 긴장이 들어가서인지, 갈수록 허벅지 뿐 아니라 이가 딱딱 부딪치며 온몸이 떨렸다. 아프지는 않았는데 몸이 덜덜 떨려서 의아했다.
상황이 점차 급박해지면서 주치의 선생님이 질 쪽을, 간호사분들이 사방팔방을 맡으시며 힘주기를 했다. 정말로 사방팔방, 침대의 여기저기에 앉아서 내 배를 누르셨다. 요가도 하고 PT도 받아봤지만, 평생 이렇게 사력을 다해 쉼없이 힘을 준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명존쎄’ 수준으로 충격적인 강도의 배 누르기가 이어지니, 유튜브에서 배운대로 하복부에만 힘을 줄 수도 없었다. 이대로는 내 심장이나 위장 둘 중 하나는 터질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배에 힘을 잔뜩 줬는데, 아기는 대체 언제 나오는 것일까? 그런 와중에 나는 정말 사력을 다해서 힘을 주고 있는데 모두가 내게 “힘 주세요!”라고 하시니,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사력을 다해 힘을 줄 뿐이었다.
“12시 28분.”
“아기 나왔어요.”
아기가 내 배 위로 얹혀졌고, 석션 같은 도구로 입 안의 이물질을 빼주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기가 왜 안 우나요?”
분만실을 왔다갔다 하시던 대표원장님이 아기를 데려가시고는 분만실 한켠의 다이(?) 위에 놓고, 커튼 뒤에서 뭔가 처치를 하시는 게 살짝 보였다. 석션 소리와 아이를 찰싹찰싹 때리는 소리, 대학병원 구급차에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라도 들려주면 아이가 안정을 찾지 않을까 싶어서, “루나야 엄마야” 하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데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일반인인 나도 의문이었는데, 의료진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런건 소용없으니 그만 얘기하세요”라고 하지 않았다. 의료진 모두가, 산모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아무 말 없이 맡은 할 일을 이어갈 뿐이었다.
“켁…… 응애…….”
그 소리를 기점으로 아이가 조금씩 울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출동 요청을 취소하고, 이런저런 검사와 처치를 위해서인지 아이를 데려가셨다.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속으로는 ‘출동 요청…… 그냥 취소 안하고 보험처럼 유지해두시면 안 되려나’ 하고 다소 이기적인 생각을 잠깐 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간호사 한 분과 남아서 나의 후처치를 하셨다. 나는 여전히 몸이 덜덜 떨렸지만, 진이 빠지고 무통주사 약기운 때문에 깜빡깜빡 잠이 들었다.
30분쯤 걸려 후처치가 끝났고, 간호사 한 분이 아이를 데리고 와주셨다. 연두색 모자를 쓴 뽀송한 아기였다. ‘내가 이 아이를 낳았다고?’ 하는 신기함과, 한 명의 사람을 세상으로 초대한 것 같은 기분에 ‘내가 엄청난 일을 했구나 (= 해냈구나 + 저질렀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질 출혈이 많아서 거즈를 잔뜩 끼고, 수액과 소변줄을 단 채로 휠체어에 앉아 입원실로 이동되었다. 아주 천천히 움직여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했다. 내 몸, 그리고 어느 정도는 내 정체성에서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아기가 쑥 하고 빠져나간 뒤의 나 자신은 조금 어리둥절하게 느껴졌다. 입원실에 머무는 동안에는 주치의 선생님께서 몇 번 다녀가시면서 아이 상태가 건강하다고 체크해 주셨고, 간호사 선생님들도 진통제 주사 등등을 위해 다녀가셨다.
오후 3시에 첫 국밥을 먹고, 5시에 또 저녁을 먹었다. 어찌 그리 배고프던지. 남편이 온갖 수발을 들어주었는데, 대화를 끊임없이 나누며 심적으로 정말 많이 의지가 되었다.
자연분만이라 당장에도 걸을 수는 있지만, 이 몸으로 아이 면회를 갈 자신은 없어서 남편이 아이 면회 두 번을 다녀왔다. 사진을 보여주었다. 다시 봐도 신기하고 귀여웠다. 나오느라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다시 아기 사진을 보는데, 그제서야 모든 게 실감이 났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안 울길래 걱정했던 것, 조산기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노심초사했던 것, 유도분만이 잘 될까 잔뜩 긴장하며 병원에 왔던 것. 그 모든 일이 잘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서 펑펑 울었다.
너무 귀엽고, 태어나느라 정말 수고 많았던 나의 아기. 연두색 모자 쓴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그나저나 낳고 보니 3.3kg였다. 2.8kg인 줄 알았는데, 0.5kg이나 더 크다니?그래서인지 질을 잔뜩 찢고 나왔다고 한다. 조리원에서 글으 ㄹ쓰고 있는 지금도 팅팅 부어서 너무 아프다. 40주 만출 기다릴 필요 없다고 하신 원장님, 감사합니다. 더 있었으면 엄청나게 더 찢어졌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