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11일
아이가 벌써 만9개월에 접어들었다.
일요일인 오늘부로 9개월 11일이니, 태어난 지 아홉 달을 채우고도 열흘을 보낸 셈이었다. 그 짧은 열흘 동안, 아이는 눈부신 성장을 보여줬다.
“엄마, 나 이제 8개월 아니고 9개월 베이비라구요.”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잠깐, 루나야, 너 며칠 전까지만 해도 8개월 아가였다니까……?
지난 월요일, 아이는 ‘잡고 앉기’를 마스터했다. 며칠 전부터 아이는, 뭔가를 짚고 몸을 원산폭격 엎드려 뻗쳐 자세를 자꾸 취하기 시작했다. 마침 놀이 육아 관련된 책에서도 이맘때에 아이가 잡고 설 만한 것들을 깔아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역류 방지 쿠션이랑 신생아용 매트리스 같은 것들을 여기저기 깔아줬다. 그랬더니 하루는 역방쿠를 짚은 채로 머리를 박고 있다가, 옆으로 기우뚱하며 앉았다.
우연인가? 그러나 아이는 온종일 옆으로 돌아앉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일주일 내내 ‘앉기’를 연습했다. 마침내 아이는 쿠션을 짚지 않고 맨바닥에서도 앉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제는 울타리 난간 구멍의 턱을 잡고,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릎을 꿇고 앉기도 하고, 돌아 앉기도 하고를 수없이 거듭했다.
그러다 어제인 토요일에는, 아이가 ‘잡고 서기’를 시작했다. 완전히 허리까지 쭉 펴서 어른처럼 꼿꼿한 자세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보행기에 의지해 걸음을 옮기는 노인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 앞으로 기울었지만, 그래도 아이는 무릎이 아니라 두 발로만 무게를 지탱해 몸을 일으켰다. 나는 기꺼이 ‘잡고 서기’의 도구로 내 몸을 내어주었다. 비스듬하게 누워서 옆구리를 짚게도 해주고, 양반다리로 앉아서 허벅지나 무릎을 잡고 몸을 일으키게도 해주었다.
그리고 오늘 일요일에는, 아이가 집게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우리집에는 ‘알파벳 주’라고 하는, 원통을 굴리면 동물 울음소리나 이름 같은 것을 알려주는 장난감이 있었다. 지금껏 아이는 원통 굴리기나 꿀벌 모양 장식을 팽글팽글 돌리는 데에만 열중해왔다. 그런데 아침에 샤워를 하러 가려다 보니, 아이가 장난감 하단에 붙어있는 세 개의 버튼을 차례차례 눌러보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도 아니고, 플라스틱 블럭으로 팡팡 내리치는 것도 아니고. 아이는 내 엄지손가락 한마디밖에 안되는 그 작은 집게손가락으로, 신중하게 버튼 하나하나를 눌러가며 효과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불이 들어오나? 무슨 소리가 나나? 저건 누르면 어떻게 되지? 놀라워서 남편과 함께 숨죽여가며 영상을 남겼다.
세상에. 이건 원더윅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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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육아 서적을 하나 읽었다. <나는 워킹맘입니다>라는 책이었다. 책에서는 이런 얘기를 했다.
‘어제까진 손 잡아줘야 걸었는데, 오늘은 혼자서 걷는 게 아이들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고를 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무언가를 해냅니다. 한눈팔기 아깝습니다.’
그 굉장한 일주일 동안, 안타깝게도 나는 앓아누워 있었다. 월요일 저녁에 인생 처음으로 사랑니를 발치했다. 치과에서 처방해 준 약을 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항생제가 매회 들어 있었다. 원래도 항생제에 취약한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너무 심했다. 설사가 멎지를 않았다. 하루동안 혼자서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다 썼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울적해지는 법일까? 괜시리 서글퍼지곤 했다. 만약 내가 아니라 남편이 설사맨이 되어서 앓아누웠다면 어땠을까, 하고 쓸데없는 상상을 했다. 휴가를 내거나, 아니면 출근해서 화장실을 들락거리거나 했겠지. 하지만 육아라는 업무 특성상 집에서 지내는 나로서는, 전투불능 상태가 되어도 일단 집에 있기는 하니까 어쩐지 병가를 허락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병가라니. 어차피 집에 있잖아? 화장실 때문에 자리를 비울 때마다 아이는 울겠지만, 그래도 뭐……. 힘내고 잘해 봐, 화이팅.
그러나 다행히 현실은 무척 다정했고, 환자의 상상은 피해망상에 불과했다. 남편은 수목금 내리 오전 반차를 쓰고, 오후에는 친정 어머니께서 바톤을 이어받아 아이를 봐주셨다. 나는 마치 코로나 때처럼 이리저리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를 주로 돌보는 일은 남편과 친정 어머니께 맡기게 되었다. 그러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남편에게 “몸져 누워있어도 돼요?”라고 물었고, 남편은 “물론이지” 하고 답했다.
그래서 지난 일주일간 나는 주로 몸져 누워있었다. 오후 네 시에 잠들어서 다섯 시 반에 일어날 때도 있었고, 아이가 잠든 1시 반부터 3시까지 나도 낮잠을 자고 있을 때도 많았다. 금요일이 되어도 차도가 없었던 탓에, 내과를 다시 방문해서 40분 동안 수액을 맞고 오기도 했다. 월요일에는 사랑니를 발치하고, 화요일에는 나머지 잇몸치료를 하고, 수요일에는 내과에서 약을 타오고, 금요일에는 수액을 맞다니. 짧은 기간의 병원 방문 횟수로는 인생 신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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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비몽사몽간에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9개월의 마법이 휘리릭 펼쳐져 있었다. 아니, 그 짧은 일주일만에 이렇게 발전해도 되는 건가? 정녕 만9개월이란 이런 것인가……?
물론 예전에도 마일스톤같은 시기들은 있었다. 백일이라든지, 6개월이라든지. 아이가 잠투정 없이 낮잠 입면을 한다거나, 밤에 통잠을 잔다거나, 뒤집기를 한다거나, 등밀이(배밀이가 아닌…)를 한다거나, 폭풍 옹알이를 한다거나. 그런데 7개월, 8개월에 접어들자 한 텀 쉬어가는 것처럼 물에 물 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배밀이를 하면서 집안 곳곳을 탐험하고, 그게 대체로 전부였다.
그러다 9개월이 되었더니 갑자기 확 컸다. 심지어 윗니 두 개도 나려고 했다. 아랫니처럼 구멍이 먼저 뽕뽕 뚫리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그냥 이가 비집고 나오면서 아주 작은 흰 쌀눈 같은 게 보였다. 게다가 말귀를 알아듣는 것처럼, 부르면 쳐다보기도 한다. 전선이나 더러운 것을 만지려고 할 때, 딱히 손으로 제지하지 않고도 “안 돼”라고 단호하게 여러 차례 말하면 아이가 나를 빤히 보면서 ‘흐에엥!’ 하고 울었다. 말도 “엄-멈멈머……”에서 “엄-마.” 하고 분명한 발음을 냈다. 심지어 목소리 톤마저 한결 높아졌다.
그 와중에도 “아빠”는 아직이었다. 아무리 가르쳐줘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루나야, ‘아-빠’ 해 봐. 그럼 아빠가 참 좋아하실 텐데. 그러나 아이의 최선은 “아압…… 뿌우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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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인 어제는, 아이가 밤 9시쯤에 와앙 울었다.
한 5분 정도 기다려봤지만 아이는 무슨 악몽이라도 꿨는지 자꾸만 자려다 일어나서 울었다. 남편이 달려가서 토닥이며 재워줬다. 여느 때처럼 남편도 잠들었다. 그렇게 옆에서 아이랑 같이 잠들지 말라고 했건만, 본인은 누우면 잠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누워서 눈을 감지만 않아도 잠이 안 올 텐데.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안방 침대에 혼자 누워서 책을 집어들었다. 최근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기 시작했다. 회사 전자도서관은 범우문고에서 출판한 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무슨 80년대에 번역한 것처럼 어색한 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실제로는 2016년 출판인 것 같다). 찾아보니 사람들은 민음사 버전을 많이 읽는 모양이었다. 예스24에서 쿠폰을 먹여가며 2~3천원을 주고 전자책을 내려받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희한한 소설이었다. 19세의 나이에 일약 스타 소설가가 되었다는 작가도 신기했고, 젊은 나이의 작가가 30대 후반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술술 써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문단을 나누지 않고서 이 사람의 심경으로부터 저 사람의 심경으로 휙 넘어가 서술하는 방식도 낯설었다. 최대한 친절하고 간명하게 쓰는 요즘의 웹소설들과는 판이했다. ‘읽을 테면 읽어 보셔……’라는 듯한 태도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프랑스 사람들의 사고방식인가?’ 하는 의문을 품은 채, 소설을 읽어나갔다. 과연 어릴 때부터 분리수면과 수면교육, 크레쉬(어린이집)에서의 사회성 체득을 통해 독립심을 키워나간 주체적인 사람들은 이런 느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가. 아니,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 없나? 어쨌든 조금은 어렵다…….
그러다 어느 순간, 책을 읽던 눈동자의 움직임이 달라진 게 느껴졌다. 마치 삐걱거리며 두발자전거를 타다가, 문득 거침없이 씽씽 달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쉽게 읽히는 현대 소설이나 에세이들 위주로 읽던 나의 눈이 어떤 미지의 문법을 터득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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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설명할 수는 없어도, 나는 내 안의 무언가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아무 것에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오늘도 여느 때처럼 나 자신이 문득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이 훌쩍 넘엇는데도 아직까지 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육아에 전념하는 전업주부가 될 것도 아니고, 명예나 부에 어느 정도 다가선 것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내세울 게 없는 나 자신을 느꼈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 달리, 비참하면 비참한대로 살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모든 게 다 괜찮게 느껴졌다. 소설 속 인물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었다. 누구 하나 제일로 특별하달 것 없이, 각기 자신의 삶을 그럭저럭 살아갈 뿐이었다. 반드시 특별해질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해져야만 살 수 있는 인생이랄 것도 없었다.
부옇게 번져오는 초겨울의 아침 햇살을 바라보면서, 아이와 함께 깔깔 웃으며 오전을 보냈다. 아이는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내 몸을 잡고 서거나 넘어가려고 애쓰며 까르르 웃었다. 피셔 프라이스의 장난감 세트에 들어있던 넓적한 코인 세 개를 줬더니 서로 부딪쳐보며 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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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남편과 노는 동안, 아이 침대를 정리하러 갔다.
아이 침대는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청소기로 밀어줬다. 침대 패드는 일주일에 한 번 세탁해서 교체해주지만, 먼지나 머리카락 같은 건 매일 생겼다. 특히 남편이 아이와 함께 자고 일어난 자리에는 언제나 머리카락이 송송 떨어져 있었다.
슈퍼 싱글 말고 패밀리 침대를 살 걸. 아이 침대는 백일 무렵까지 원목 울타리로 된 아기침대를 쓰다가 범퍼 침대로 갈아탔고, 그 후에 슈퍼 싱글 사이즈를 새로 들인 상태였다. 원목 침대에서는 아이가 빙글빙글 돌다가 울타리를 자꾸만 발로 걷어찼기에 사이즈 업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초등학생까지도 쓸 수 있다는 슈퍼 싱글 침대로 바로 교체하고 싶었다. 하지만 권고대로 최소 6개월까지는 안방에 데리고 자고 싶었다(이마저도 어떤 권고에서는 6개월이 아니라 돌이라고 하긴 했다……). 안방에 이스턴킹과 슈퍼 싱글이 공존할 수는 없었기에 적당한 사이즈의 범퍼 침대를 들여놓았다.
하지만 아이를 재우러 함께 침대에 들어가 있는 시간에는 늘 ‘두 다리 뻗고 싶다’ 하는 강한 욕망이 일었다. 범퍼 침대는 아무래도 좁아서 무릎을 세우고 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범퍼 벽에 발끝을 대고 무게를 실으려니 발가락도 아프고 삐걱이는 소음도 나는 데다가 무엇보다도 불편했다. 남편은 슈퍼 싱글 대신에 패밀리 침대는 어떤지 재차 물었는데, 여기서 넘어가면 분리수면도 수면의 질도 말짱 도루묵이 되겠다 싶어서 슈퍼 싱글로 결정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통잠 비슷하게 자기 시작하니, 차라리 패밀리 침대를 살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아이와 함께 낮잠 자는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슈퍼 싱글 침대에 성인 한 명과 아기 한 명이 누워있으면 당연히 비좁았지만, 그래도 곁에 따뜻하고 보송한 나의 아기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으면 나도 잠이 솔솔 왔다. 밤에도 그런 행복을 느끼며 자고 싶다는, 그리고 아이가 악몽이라도 꿔서 깼을 때 바로 곁에 있어주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다.
이제 와서는 완전 새 제품인 슈퍼 싱글 침대를 헐값에 처분할 수도 없다고, 게다가 안방에 있는 (이 또한 얼마 안 된) 이스턴킹 침대까지 없애버리기에는 두 배의 낭비 같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사실 후회할 일은 아니었다. 분리수면을 하고 슈퍼 싱글 침대를 구입할 당시에는 지금과 상황이 무척 달랐다.
그 무렵의 아이는 한 두 시간마다 비명 또는 고함을 지르며 깼다. 범퍼침대 곁에 있던 나와 남편은 덩달아 수면장애로 고통받았다. 심지어 그런 나날들 가운데서도 남편은 숙면을 곧잘 취하곤 했는데, 그게 내게는 때때로 시련을 안겨줬다. 내 왼편에는 침대에 나란히 누운 남편이 코를 골거나 무신경하게 뒤척이는 소리를 내고, 내 오른편에는 범퍼침대에 잠귀 밝은 아기 한 명이 그 소리에 끙끙댔다. 확률은 반반, 아기는 저 소리에 깰 수도 있고 안 깰 수도 있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 껴서 잔뜩 긴장한 채로 잠을 청하곤 했다. 결국 맨날 불면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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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부터는 수면교육을 아예 안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친구로부터 들었다.
하긴, 나도 첫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패밀리 침대가 좋았을지도……’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아이를 키우면서는 예상보다도 많은 때에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는 규범들을 마주치곤 했다. 이유식은 이렇게, 수유는 또 이렇게, 집안 온습도는 어느 정도로. 수면교육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중에서 무엇이 중요하며 무엇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인지는, 막상 아이를 키워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규범들은 애초에 선택사항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분간하기가 더 어려웠다.
예컨대 만6개월이 되면 이유식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 무렵 아기는 엄마로부터 받아온 철분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소고기를 매일 10~20g 정도 꼬박꼬박 먹어줘야 빈혈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아기주도 이유식을 하면서 소고기 다짐육이 아니라 얇게 썬 고깃덩이를 주면서 핏물만 빨아먹어도 괜찮다고 한다(솔직히 어째서 괜찮은지 그 근거가 조금 궁금하다). 한편으로는 전세계 베스트셀러 육아서 중 하나인 <베이비 위스퍼>에서, 저자는 만6개월에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고기는 안 주고 배즙같은 소화가 잘 되는 음식만 준다고 한다. <삐뽀삐뽀 119 소아과> 책에서는 오히려 배를 너무 많이 주면 복통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하던데…….
연예인급 인기를 자랑하는 베테랑 보모마저 소아과 지침서와 상이한 기준을 따르고 있으니, 초보 부모들이 온갖 육아 지침들 가운데서 필요한 것들을 적절하게 추려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무엇이 중요하며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고, 반면에 어떤 권고사항들은 선택사항 혹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까지는 없는 사안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침대나 소파 위에 아이를 내버려두면 낙상 위험이 있으니 절대 안 된다는 권고는 반드시 따라야 한다. 대변 기저귀는 요로 감염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가급적 바로 갈아줘야 한다는 말도 따르는 게 맞다. 그런데 수면교육은 해야 할까? 자립심과 주체성을 키워주기 위해서 과연 수면교육은 필수적인 것일까? <나의 부모님이 이 책을 읽었더라면>이라는 책에 의하면, 서양과는 달리 아시아권에서는 문화적으로 곁잠을 많이들 잔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렸을 때 그렇게 컸다. 그래도 나는 독립심 가득한 K-장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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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인터넷을 찾아보니, 도움이 되는 말이 있었다. 패밀리 침대에서 자다가 아이한테 맞았다는 간증이 많았던 것이다. 수면 중에 무방비 상태로 아이 발망치에 복부를 강타 당하거나, 꿀주먹에 코가 깨진다거나…….
그러니까 아무래도 현 체제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물론 고민한 시간은 유익했다. 고민 끝의 결정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선택보다 후회를 줄여주니까.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했다. 핑거푸드며 수면교육이며 최근 트렌드를 따라가려 전전긍긍하고, 그렇지 않으면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잘못 키우는 줄로만 알아서 쩔쩔매곤 했는데. 이제 와 보니 수면교육에서부터 곁잠까지 생각이 많이도 바뀌어 있었다.
주말을 맞아서, 그리고 설서맨 졸업을 축하하며,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외출하는 오후였다. 지하철역으로 길을 나섰다. 여러모로 마치 오랜만에 걷는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깥은 풍경마저 달라져 있었다. 집 근처 대규모 공사 현장에서는 이제 아파트는 다 지었고 도로 확장 공사까지 하고 있었다. 보도 정비 소리가 요란했다.
손이 시려워서 패딩 주머니에 넣고 걸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손이 시릴 정도로 춥지는 않았는데. 날씨가 이렇게 바뀌었구나.
일주일은 긴 시간이었다. 9개월을 산 사람에게도, 33년을 산 사람에게도.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Alexander Dum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