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 참에 비상탈출!
‘완벽한 때라는 게 있기나 할까?’
그 날 나는 “똥컴, 똥컴”을 되뇌고 있었다. 그 놈의 “로딩중...”이 사라질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 때 건드리면 또 뻑나서 창이 아예 다 꺼지겠지. 하릴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비어버린 시간을 틈 타, 습관처럼 공상에 빠져들었다.
이런 생활을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건국 이래 최장의 추석연휴에 나는 사무실에 있었다. 날씨도 좋은데, 출근해서, 밑도 끝도 없이 윗선에서 시킨 일 때문에 오전 10시부터 앉아 컴퓨터를 켰고, “로딩중...”을 바라보며 멍을 때린다.
머릿속에는 온갖 잔상들이 슬라이드쇼처럼 샥샥 지나갔다. 11월에 갔던 이탈리아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파마산 치즈의 도시, 파르마에 가서 먹었던 피자. 진짜 맛있었는데. 씬도우가 무슨 호떡같이 쫄깃했어. 중간에 들렀던 페루지아라는 도시, 거기도 정말 예뻤고. 높은 산들이 멀리에 널찍한 능선을 그리고 있었지. 절벽 위에 있는 도시여서 경치도 참 좋았는데. 포도밭같은 구릉들이 안개에 살짝 가려서 그림 같았어.
그런 도시에서 한 달 정도 살면서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면 좋으련만. 산책 다니면서 바람도 쐬다가, 마주치는 작은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씩 여유롭게 마시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은 무주택 세대주로서 다달이 월세를 내는 처지에, 월급 꼬박꼬박 주는 회사를 다니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 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스펙 좋은 사람도 많았다. 이 회사 안에서만 해도, ‘저 사람이 왜 나랑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나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장에 여기를 때려치우고 나가면, 한 달만 지내봐도 취업난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겠지.
“띵”
카톡이 날아왔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아, 안 돼. 25명짜리 카톡방에 추석 축하 문자가 시작됐다. 가장 성가신 문자가 두 가지 있다면, 하나는 회사 단체 카톡방이고 다른 하나는 생일축하 문자일 것이다. 누구 한 명만 시작하면 하루 종일 생일축하생일축하생일축하. 친한 애들 대여섯 명인 방이면 모르는데, 평소에는 잘 연락도 안 하던 단체 카톡방이면 지루함의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띵”
“띵. 띵.”
“띵. 띵. 띠디딩. 띠딩.”
혹시 무슨 재미있는 얘기가 오가나 싶어서 봤는데, 다들 그저 그런 안부 이야기뿐 이었다. 잘 지내? 아 진짜 야근 너무 싫다ㅋㅋㅋ 우리 언제 함 봐야지! 응응 추석 지나고 날짜 한번 잡자!
아니 날짜를 잡을 거면 지금 잡든가. 지금이 추석인데. 결국 안 보겠다는 말이잖아.
단체카톡방 알람을 껐다. 그래도 계속해서 핸드폰에는 노란색 LED 등이 점멸했고, 하도 신경이 쓰여서 아예 뒤집어 놓았다.
그런 와중에도 컴퓨터는 아직도 “로딩중...”이었다. 아 정말!
책이나 읽으면서 5분만 더 기다려봐야지. 그래도 안 되면 재부팅이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