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 참에 비상탈출!
가방에서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백만장자가 된 어떤 미국인이, 자기가 돈을 빠르게 벌어들인 방법을 적어 놓은 책이었다. 큰 틀에서 일종의 자기계발서였다. 자신감과 실행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부럽다 부러워. 부자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이 사람은 나 자신조차도 납득되지 않는 회사 일 때문에 휴일출근을 하지는 않겠지.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그렇게 부자가 된 덕분에 자기의 삶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제한된 돈과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과 해주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 수 있는 삶이었다. ‘아 스페인 가고 싶어’ 하면, 곧장 퍼스트클래스를 끊어서 스페인을 다녀올 수 있는 그런 삶.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뒷전이고 남이 시키는 일을 해주며 월급을 받는 삶이 아니라.
책을 읽다 보니 점점 나는 작가의 삶에 빠져들고 있었다. 현실도피라는 게 이런 걸까?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몇 백 억 매출을 올리는 회사에서 CEO로 재직 중이었다. 재미 들린 김에 한 15분 정도를 책 읽는 시간으로 정하기로 했다. “로딩중...”을 뒤로 한 채, 책을 끼고 아래층 사내카페로 향했다.
계단을 들어서자 소리가 울렸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부터 내 발소리까지, 몇 십 층이나 되는 건물 계단을 ‘터엉, 터엉’ 울리는 메아리가 되었다.
살짝 무서운데…….
긴긴 추석 연휴에 나 혼자라니, 잘못하면 회사 건물에 갇힐 수도 있겠는걸. 초등학생 때 들었던 비슷한 괴담이 기억났다.
야, 예전에 우리 학교에서 방학하는 날에, 어떤 애가 뭐 까먹고 안 가져갔어서 집에 갔다가 다시 교실에 왔었대. 그런데 걔가 물건 찾는 동안에 밖에서 경비 아저씨가 교실 문이랑 학교 문 다 잠그고 가버렸대. 그래서 걔가 교실에 갇혀 버렸는데, 교실에 근데 먹을 것도 없고 그래서, 방학 끝나고 교실 가니까 걔가 죽어 있었대.
으으, 다시 생각해보면 끔찍한 이야기다. 방학 끝나고 처음 문을 연 순간 보이는 게 썩어가는 시체라니! 그렇지만 끔찍하게 허점 많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학교 창문이란 자고로 덜그럭거리며 약해빠진 창문이기 마련이고, 교실에 널린 게 의자인데, 창문 하나도 깨부수지 않았다고? 그 긴 방학 동안? 이 외에도 그 학교는 참 전설이 많은 학교였다. 5반에 마룻바닥 나무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는데, 그거는 거기 밑에 시체가 묻혀 있어서 그렇대. 운동장에 있는 커다란 나무가 전설의 나무인데, 밤에 가면 나무가 움직여서 애들 지나갈 때 붙잡는대.
이렇게 연상작용이 진행되면서 나는 좀 더 무서워졌고, 비상계단을 후다닥 내려갔다. 하필이면 문도 철문이라 열리고 닫힐 때 엄청 큰 소리가 났었는데, 아까 났던 “터엉!” 하는 소리가 1층부터 70층까지 다 울렸던 것만 같았다. 사람도 없어서 깜깜하고 정적만 흐르는, 아득히 먼 계단들이 상상돼서 너무 무서웠다.
자 이제 사내카페 층이다. 그런데…….
사원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