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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살짝 무서운데

(연재) 이 참에 비상탈출!

by 구의동 에밀리

가방에서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백만장자가 된 어떤 미국인이, 자기가 돈을 빠르게 벌어들인 방법을 적어 놓은 책이었다. 큰 틀에서 일종의 자기계발서였다. 자신감과 실행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부럽다 부러워. 부자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이 사람은 나 자신조차도 납득되지 않는 회사 일 때문에 휴일출근을 하지는 않겠지.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그렇게 부자가 된 덕분에 자기의 삶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제한된 돈과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과 해주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 수 있는 삶이었다. ‘아 스페인 가고 싶어’ 하면, 곧장 퍼스트클래스를 끊어서 스페인을 다녀올 수 있는 그런 삶.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뒷전이고 남이 시키는 일을 해주며 월급을 받는 삶이 아니라.


책을 읽다 보니 점점 나는 작가의 삶에 빠져들고 있었다. 현실도피라는 게 이런 걸까?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몇 백 억 매출을 올리는 회사에서 CEO로 재직 중이었다. 재미 들린 김에 한 15분 정도를 책 읽는 시간으로 정하기로 했다. “로딩중...”을 뒤로 한 채, 책을 끼고 아래층 사내카페로 향했다.


계단을 들어서자 소리가 울렸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부터 내 발소리까지, 몇 십 층이나 되는 건물 계단을 ‘터엉, 터엉’ 울리는 메아리가 되었다.


살짝 무서운데…….


긴긴 추석 연휴에 나 혼자라니, 잘못하면 회사 건물에 갇힐 수도 있겠는걸. 초등학생 때 들었던 비슷한 괴담이 기억났다.


야, 예전에 우리 학교에서 방학하는 날에, 어떤 애가 뭐 까먹고 안 가져갔어서 집에 갔다가 다시 교실에 왔었대. 그런데 걔가 물건 찾는 동안에 밖에서 경비 아저씨가 교실 문이랑 학교 문 다 잠그고 가버렸대. 그래서 걔가 교실에 갇혀 버렸는데, 교실에 근데 먹을 것도 없고 그래서, 방학 끝나고 교실 가니까 걔가 죽어 있었대.


04 비상구.jpg


으으, 다시 생각해보면 끔찍한 이야기다. 방학 끝나고 처음 문을 연 순간 보이는 게 썩어가는 시체라니! 그렇지만 끔찍하게 허점 많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학교 창문이란 자고로 덜그럭거리며 약해빠진 창문이기 마련이고, 교실에 널린 게 의자인데, 창문 하나도 깨부수지 않았다고? 그 긴 방학 동안? 이 외에도 그 학교는 참 전설이 많은 학교였다. 5반에 마룻바닥 나무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는데, 그거는 거기 밑에 시체가 묻혀 있어서 그렇대. 운동장에 있는 커다란 나무가 전설의 나무인데, 밤에 가면 나무가 움직여서 애들 지나갈 때 붙잡는대.


이렇게 연상작용이 진행되면서 나는 좀 더 무서워졌고, 비상계단을 후다닥 내려갔다. 하필이면 문도 철문이라 열리고 닫힐 때 엄청 큰 소리가 났었는데, 아까 났던 “터엉!” 하는 소리가 1층부터 70층까지 다 울렸던 것만 같았다. 사람도 없어서 깜깜하고 정적만 흐르는, 아득히 먼 계단들이 상상돼서 너무 무서웠다.


자 이제 사내카페 층이다. 그런데…….


사원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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