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교환학생은 언제 갔었어?"라고 물어보면, 난 늘 이렇게 대답했다.
"2012년에서 2013년 사이에 걸쳐서 갔어. 그 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지."
"아, 인생의 황금기……. 잠깐, 아직 30대잖아?"
매년 가을이 되면 교환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한국의 여름과 겨울 사이, 그 짧은 계절에는 런던의 아침 공기 같은 날씨가 간혹 느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사진을 뒤적이거나 일기장을 다시 들춰보지도 않았는데, 서늘한 공기가 스칠 때면 교환학생 때 보았던 장면들이 얼핏 보이는 듯 했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장면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학생으로서 나름 티켓값을 들여가며 봤던 <라이온킹> 뮤지컬보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담요 한 장을 몸에 둘둘 말고 친구들과 두런두런 얘기 나누던 때가 기억났다.
지금으로서는 이미 10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이제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지도 한참이라 승진마저 몇 번 했고, 결혼을 한 지도 벌써 몇 년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로 출근하고, 업무 끝나면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그 날 하루가 어땠는지를 이야기하는 일상이 익숙하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날들이었다. 직장도 번듯하고, 아늑한 집도 있고, 몸도 건강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를 향수가 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지금이라도 손을 뻗어 붙잡아 달라는 듯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그 때의 이야기를 글로 붙잡아 남기기로 했다. 20대 초반의 내가 런던에서 9개월간 머물며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30대의 나 자신이 기억을 되살려 적어 내려갔다.
다행히, "교환학생 가면 일기를 꼭 쓰도록 해. 나는 일기 안 썼더니 기억 하나도 안 나더라"라던 친구의 조언에 힘입어서 꽤나 많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 일기들을 블로그에 비공개 처리해 두어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흑역사의 기록도 많았다. 부모님 도움으로 교환학생을 갔으면서 스스로가 뭐라도 된 양 우쭐해져 있던 날도 있었고, 플레이팅이 엉망인 사진을 업로드 해 놓고는 '요리를 잘했다!'라고 적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역시 추억을 글로 엮어내는 시간은 즐거웠다. '한 달 살기'가 한 때 유행처럼 번졌던 것을 생각하면, 해외에서, 그것도 유럽에서 1년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는 일은 행운이었다. 어쩌면 3박4일 정도의 짧은 여행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기억을 그 때 차곡차곡 쌓았던 덕분에, 지금 그 추억을 심심할 때마다 귤 까듯 까먹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럼 이제, 오늘의 추억을 한 알 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