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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May 01. 2024

아기의 하루

1개월 4일

며칠 전에는 소아과를 다녀왔다. 


아기랑 처음 외출하는 날이었다. 출산 직후의 산부인과와 조리원은 별개로 하고, 아기 아빠랑 친정 엄마랑 셋이서 아기를 카시트에 태우고 어디론가 나서는 첫 날이었다. 어찌나 긴장되던지!


아기는 아무 것도 모르고 카시트에 타자마자 곧장 잠이 들었다. 병원 침대에서 대기할 때도 쿨쿨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간호사 분들과 의사 선생님에게 붙들려서 간염 주사와 BCG 피내형 주사를 맞았다. 


남편이 피내형 주사는 되게 아프다고 알려주었는데, 정말로 아기는 처음 들어보는 울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이걸 맞아야 나중에 더 큰 병에 걸릴 일을 예방하는데.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어서, 아이와 친정 엄마와 남편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말했다.


“아프지? 그치만 우리도 다 맞았어…….”


진료실에는 몸부림치면서 주사 맞은 사람들끼리 모여 있었다. 




밤에는 수유를 하고 나서도 아이가 한동안 말똥말똥했다. 


보통은 저녁 수유를 하면 아이가 분유에 취해서 수유 도중부터 눈을 감고 잠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트림을 시키고, 게워내지 않도록 잠시 안아주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눈을 뜨고 있었다. 


공갈 젖꼭지를 물리고, 안방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를 아기 침대에 눕히고, 나도 좀 쉬려고 그 곁의 어른 침대에 누웠다. 


수유등만 켜둔 안방은 어둑어둑했다. 옆으로 누워서 아기 침대를 보니, 나무 울타리 사이로 아이의 두 눈이 보였다. 입이 오물오물하면서 공갈 젖꼭지가 작게 움직였다. 


아기도 이 쪽을 보면서 조용히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지금 무렵에는 15~30cm 거리의 물체만 보인다는데, 이 어두운 안방의 1m 거리에 떨어진 내 모습이 보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 둘이서 멍 때리며 한동안 눈만 깜빡였다.




아기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당탕탕한 하루를 보내고 곤히 잠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기는 스와들업을 입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배가 위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게 보였다. 어른처럼 두 팔이 자유로운 옷을 입고 자면 모로반사 때문에 깨서, 팔을 ‘만세’ 자세로 제한시켜주는 잠옷을 입혀 두었다. 


아기의 오늘 하루는 어땠을까? 난생처음 소아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입을 벌려주시면서 혀를 쇠막대기로 눌러 입 안을 보셨다. 아픈 주사도 두 방이나 맞았다! 카시트는 처음 타봤는데 포근해서 바로 잠들었다. 


정말로 꽉 찬 하루였다. 




잘 자다가도 아이는 종종 용을 쓰며 깼다. 


사람들이 ‘이계인 소리’라고 통칭하는 “그르렁, 낑낑” 하는 소리를 냈다. 성장통 때문이라고도 하고, 아기 버전의 잠꼬대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크게 걱정할 소리는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곁에서 잘 지켜보다 보면, 낑낑대는 소리가 단순히 ‘용쓰기’인지 아니면 속이 안 좋아서 ‘저 좀 일으켜 세워주세요……’ 하는 신호인지를 조금은 구분할 수 있다. 


경험상, 식도에서 ‘구르륵’ 하고 액체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것 같은 소리가 같이 들리면 후자인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필시 게워냈다. 


오늘 새벽에도 그런 소리를 내길래 일으켜 세워주었다. 게워낸 것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분유를 바꿨더니 다른 냄새가 났다. 


그렇게 새벽에 일어나서 한동안 안고 있다가 다시 눕혀주었다.




새벽 5시 반에 수유를 하고, 9시 반이 되어서야 아이가 배고프다고 칭얼댔다. 


까먹고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3시간의 수유텀이 1시간이나 더 지나 있었다. 어쩐지 공갈 젖꼭지를 물려줘도 ‘이게 아니라!!!’라는 듯이 물지도 않고 울더라. 


혹시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분유를 주기 전에 모유수유를 직수로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아주 오랜만에 아이를 수유쿠션 위에 눕혀서 젖을 물려보았다. 과연 물까? 젖을 물리지 않은 지 며칠씩이나 지났고, 유두혼동이 온 지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였다. 


의외로 아이는 신생아 때처럼 “하아악! 학!” 하면서 (진짜 이런 소리를 낸다),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저어가며 젖을 찾았다. 젖병 먹을 때는 전혀 나오지 않던 모습이라 다 잊어버렸을 줄 알았다. 입도 평소 같지 않게 크게 쫙 벌리기에 ‘이때다!’ 싶어서 젖을 물렸더니 한 번에 잘 물었다……?


그런데 아이도 ‘어……?’ 하는 표정이었다. ‘잠깐만 내가 방금 뭘 문 거지? 젖병은 아닌데, 왠지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마실 게 나오……잖아?’


남편이 물었다. 


“잘 돼요?”

“응. 서로 신기해하고 있어…….”


 * 표지사진출처: Unsplash의 baudysov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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