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감정이 먼저였던 것 같다.
생각에 빠지는 건 어렵지 않았고, 감성은 때때로 나를 압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감성이 자라나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는 걸.
감성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건, 그저 예민하거나 섬세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반드시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여유는, 안정 위에 놓여 있다.
수입이 안정되고, 집이 편안하고, 일상이 흔들리지 않아야만 비로소 우리는 감정을 꺼내 보고,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문제가 산처럼 쌓여 있는 날에는, 나조차 나를 돌보기가 벅차다.
그럴 땐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젠 안다. 감정은 환경 속에서 자라는 것이라는 걸.
그건 마치 햇살이 있어야 피어나는 꽃처럼, 조건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눈앞의 일은 더 복잡해지고, 마음 둘 곳은 줄어든다.
그래서 더 많은 걸 챙기고 정리해야만,
비로소 다시 감성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예전보다 감정이 무뎌진 게 아니라,
그 감정을 담을 ‘공간’이 잠시 좁아졌던 것뿐이다.
지금 나는 그 공간을 다시 만들어가는 중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언젠가,
다시 나를 찾아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