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감정에 대한 이야기
가끔은 정말 살고 있는 건지, 그냥 하루를 지나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 일도 없었고, 딱히 힘든 일도 없었는데도,
어느 순간 ‘이게 다 무슨 의미지?’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조용히 그 단어를 떠올린다.
권태.
누군가는 이를 ‘안정적’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인생의 노잼 시기’라 부른다.
하지만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내일에 대한 기대는 점점 흐려지고
삶의 의미나 의욕도 사라진다.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반복된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살고 있다’기보다
‘그저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에 머문다.
권태의 가장 큰 원인은 ‘반복’이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행복은 반복 욕구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삶은 본질적으로 반복된다.
그래서 반복에 권태를 느끼는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에 도달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
이러한 권태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구조 자체가
사람을 반복 속에 놓이게 만든다.
회사는 효율성을 위해 매뉴얼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인간의 감각보다 시스템과 수익이 우선된다.
사람은 점점 기계처럼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감각은 무뎌지고, 사라진다.
동일한 자극이 반복되면
신경세포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감각의 역치가 높아지면,
우리는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고,
그 결과는 무기력, 예민함, 혹은 충동으로 나타난다.
결국 권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까지 영향을 끼치는 감정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감각의 숨구멍’을 만들어야 한다.
반복적인 자극에서 벗어나,
나를 다시 일으키는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는 것.
가령,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만 보던 눈이
바다를 마주했을 때.
도시의 소음 속에 있던 귀가
한적한 서점의 책장 넘기는 소리에 잠잠해질 때.
모래 위를 맨발로 걷는 것,
오직 한 잔의 커피를 위해 먼 길을 가보는 것,
낯선 침대에서 자는 것—
익숙하지 않은 감각은
무뎌진 자극을 쉬게 하고,
감각의 균형을 다시 되찾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떠나야만 한다.
여행, 산책, 아주 사소한 비일상 속에서
감각을 새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감각의 중심을 다시 잡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다시 일상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조금은 살아있는 감각을 지닌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