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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원 Sep 30. 2022

고생 끝엔 소주가 온다 - 집 구하기 끝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11일 차

 11시에 뷰잉을 위해 브릿지포트 스테이션으로 갔다. 가는 동안 열차가 강을 넘었는데, 문득 당산에서 합정가는 기분이 느껴졌다. 역 주변엔 호텔을 제외하곤 아무 것도 없었다. 공장... 정도. 밤에 걸으면 꽤 무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밴쿠버에서 사설 공유 모빌리티를 처음 보았다. MOBI 라는 밴쿠버 시에서 운영하는 공영 공유 자전거는 많이 봤다. 30분에 9천원 정도 드는 고약한 자전거... 저건 가격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여기만 있을까? 이것도 모르겠다. 


 역에서 4분 정도 걸으니 뷰잉할 집이 나타났다. 쥐 한마리 정돈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집이었다. 집도 낡고 방도 작았지만 위치가 너무 좋았다. 출입구도 Private하고, 그러다보니 룸메이트 볼 일도 거의 없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거실도 거의 내 차지... 방과 방 사이에 화장실이 있어 방음도 좋았다. 심지어 어학원까지 2~30분. 굉장히 만족스러워 계약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뷰잉 예약이 월요일까지 잡혀 있어서 그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 돈을 조금 더 준다고 해도 안됐다.


마린드라이브 역 냄새가 났던 크레페

 게스트하우스에 지내는 분들과 함께 살만한 집들도 알아보러 다녔다. 코퀴틀람 쪽에 직장 다니는 누나가 있어 중간 쯤인 버나비에 집을 찾았다. 로얄오크 주변에서 집을 3개 정도 먼저 봤는데, 마음에 드는게 없었다. 괜찮다 싶으면 가구가 없었고, 괜찮다 싶으면 해가 들지 않았다. 집이라는게 딱 들어가는 순간 느낌이 빡! 와야한다고 외삼촌이 그러셨는데 그런게 없었다.


 그래도 사람 좋은 경우는 있었다. 베트남에서 이민 온 분의 집이었는데, 역에서 걸어가니 30분 정도 걸렸다. 심지어 일찍 도착해서 30분 더 기다리기까지. 고난과 역경에 비해 집이 실망스러웠고, 걸어 돌아갈 생각하니 앞날이 캄캄했다. 그 순간 룸메이트 형이 예전에 베트남 살았다고 스몰토크를 시작하더니... 역까지 차로 태움 받았다. 우리가 계약을 하지 않을 걸 알았는지 헤어질 때 잘 지내라는 말까지 스윗했다.


 캐나다에 있으면 사람들이 친절하단 생각을 자주 받는다. 그냥 지나다니는 사람끼리 인사하며 미소를 주고 받는다. 보행자가 기다리면 저 멀리서부터 차가 멈추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몸둘바를 모를 정도로 잘해주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에게 들어보면, 도움받은 기억이 너무 좋아서 도와주며 산다고. 이 베트남 친구도 그랬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아이디어 같은 선순환이 너무 예쁘다.


오후 6시 10분에 브렌트우드 역 주변에 뷰잉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이동하는 동안 연락 주체인 형의 휴대전화 배터리가 죽어버렸다. 이 나라는 충전해주는 곳도 잘 없으니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사실 하나 쯤 안보고 그냥 집에 가도 되는데 형이 온갖 긴장된 표정으로 이곳저곳 충전기를 찾아 다녔다. 그러다 브렌트우드 몰 인포센터에 무료 렌탈 서비스가 있어 다행히 가볼 수 있었다.


 중국인이 마중을 나왔고, 집 문을 여는 순간. 우리 세 명의 입꼬리가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역과 가까운 위치, 뻥 뚫린 창문, 넓직한 침실, 깨끗한 화장실, 바닥 난방. 단점은 카펫 바닥이라는 점과 다소 비싼 가격이었으나 여기다 싶은 느낌이 많이 들어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했다. 사실 우리 앞에 보기로 한 중국인들이 있었는데 지각해서 우리가 첫 뷰잉이 되었다고 했다. 모든게 운명처럼 느껴졌다.


 입국부터 골을 썩여온 집 문제가 해결되니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뭔가 우리끼리 축하라도 해야할 것 같아 열라면에 순두부와 고기를 넣어 열라순두부를 만들었다. 리쿼스토어에서 산 소주도 한 잔. 셋 다 별 얘기 없이 멍을 많이 때렸던 것 같다.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이고, 이사만 하면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 알맹이 없는 자신감이 솟았다.


 여기 와서 외국인 룸메이트와 함께 지내보고 싶었는데, 뷰잉을 다니다보니 생각보다 룸메이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이럴거면 차라리 마음의 안정을 위해 한국인과 사는 것도 괜찮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진 모르지만 당장은 예감이 좋다. 계약서가 빨리 오면 좋겠다. 혹시 뺏기진 않겠지.


 주말 지나서 어학원 등록까지 하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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