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19일 차
캐나다는 매월 1일에 보통 입주를 한다. 그 말은... 전국민 가슴데이처럼 전국민 무빙데이라는 말. 이른 아침부터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이사준비로 바빴다. 나와 룸메이트 두 명의 짐을 합치니 핸드캐리 제외 총 7개의 캐리어가 나타났다. SUV 우버 하나로 부족해 결국 하나 더 불러 이동했다.
웃기게도 집 바로 건너편에 MMA 체육관이 있었다. 잘됐다싶어 구글에서 좀 찾아봤는데 이거 뭐... 체육관이 아니라 진짜 트레이닝 센터 같은 느낌. 또 신기하게 기 주짓수를 했다. 단체사진 보고 형님들이 너무 무서워 가기가 두렵다. 역시 체육관이란...
룸을 쉐어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아파트의 호실 하나 전체를 렌트한 것이라 준비된 살림살이가 하나도 없었다. 물 끓일 냄비와 수저 조차 없어 라면도 못 먹었다. 그래서 집 앞 쇼핑몰에서 우육면을 먹었다. 사실 우육면인지도 잘 몰랐다. 워낙 다양한 음식들이 있는데, 전부 본토 발음이 아닌 영어로 이해할 수 있게 적다보니 검색할 방법도 없는 탓이다. 예를 들면 짜장면을 Korean-Chinese Black Bean Sauce Noodle 이라고 적는 것이다.
어제 술도 많이 먹었고, 일찍 일어나 이사하니 많이 피곤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낮잠을 좀 잤다. 이후에 기본적인 것들을 사러 월마트를 향해 출발했다. 어라라, 배가 고팠다. 맥도날드가 눈에 보였다.
맥도날드는 나라마다 판매하는 메뉴가 다르다. 해외에 불고기버거가 없는게 그 이유. 사진 속 메뉴는 Caesar McWrap with Crispy Chicken 이라는 메뉴인데, 6달러 정도 했던 것 같다. 시저 드레싱이 들어간 한국 상하이 치킨 스낵랩 업그레이드 버전이랄까. 근데 훨씬 더 맛있다. 그냥 무슨 프랜차이즈 음식이든지 한국보다 더 맛이 강렬해서 더 맛있게 느껴진다.
야외 테이블에서 먹고 있었는데 소방차와 구급차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렸다. 계단에 많은 소방관들이 몰려있었다. 그 틈 사이로 한 소방관이 무릎 꿇고 상체를 반복적으로 움직였다. 심폐소생술(CPR)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룸메이트 형과 나는 말도 없이 쳐다만 봤다. 시간이 계속 흘렀고, 네 번 정도 시술자가 바뀌었다. 곧이어 사람들이 내려왔다. 들것이 흰 천으로 감싸져있었다. 허망했다.
구급차로 들 것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데, 얼굴이 들어나 있었다. "산 건가...?" 생명의 줄다리기를 마친 소방관의 얼굴에서 미소가 보였다. 그 때 살았음을 확신했다. 열차 플랫폼 계단 내려오다가 심장마비로 황천에 발을 담글 수도 있는게 인생. 이런 광경을 처음 봐서 만약 죽었다면 한동안 조금 우울하게 지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자동차를 탄 역사가 오래되니 올드카도 자주 보인다. 내 꿈이 클래식카 타는 거라서 정말 볼 때 마다 눈이 돌아간다.
컸다. 정말 컸다. 우리나라 같으면 다층 건물을 만들었겠지만, 여기선 그런게 필요 없었다. 어차피 차 타고 올거면 외곽지에 주차장 넓게 만들고 건물도 대충 넓게 만들면 되는 일이다. 용적률은 저리 가라. 물론 그래서 우리 같은 뚜벅이들이 개고생한다.
여기서 고기 사는 일도 단어를 몰라 힘든 것처럼, 침구류도 비슷했다. (고기는 공부 좀 해야겠다 진짜) Comforter (이불), Flat Sheet (요), Pillow (베개), Duvet Cover (베개 커버), Fitted Sheet (매트리스 커버)를 샀다. 그렇게 비싸진 않았는데 월세를 포함해서 돈이 갑자기 많이 들다보니 조금 예민해져서 선택에 오래 걸렸다. 심지어 나는 이런 걸 살 때 '오래 쓰는 물건이니 좋은 것 사야지'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역시 돈 앞에선 장사 없다.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주류점에 가보았다. 어제까지 지내던 숙소 주변 주류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술들이 있었다. 가장 반가웠던건 위스키 코너. 사진보다 더 많은 위스키들이 종류 별로 있다. 버번 쪽은 한국보다 30% 가량 저렴한 것 같고, 스카치는 한국과 비슷하다. 노징 글라스에 한 잔 씩 따라 마시면 오히려 다른 술들보다 가성비가 좋으니... 얼른 하나 사야겠다. (정신승리)
저녁은 축하주와 함께 불닭게티를 먹었다. 저 소주는 24도, 750ml 진로다. 조금 웃겼던게 주류점에서 외국인이 어디서 가져왔냐고 물어보더니 자기들도 이걸 골랐다. 24도는 그럴만 하긴 해. 방금 사 온 유일한 냄비. 접시가 없어 대신 쓴 락앤락 통. 잔이 없어 락앤락통에 따라 먹은 소주. 가난 가득한 낭만. 그래도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