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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원 Oct 07. 2022

우리가 오늘 잘 방을 고르는 방법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23일 차

 아침으로 소분해둔 연어와 밥을 먹었다. 솔직히 이건 그냥 먹어도 진짜 맛있다. 씹을 가치가 있단 이 말이다. 심지어 여태까진 그냥 간장이나 뿌려먹었는데, 어제 사온 고추장을 살짝 놓아 비벼먹으니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한국에서 흔히 먹는 자포니카 쌀에 비해 인디카 종류는 밥이 날려서 잘 비벼져 좋다.


 밥을 먹고 밀린 생존기만 썼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지내던 동생이 오후에 집을 들렸다. 가지고 있는 음식이라곤 맛은 없고 영양분만 가득한 것들이라, 냉장고에 넣어뒀던 닭다리를 오븐에 구웠다. 예전에 한두개 먹어봤을 때 시즈닝이 너무 두껍고 염지가 심하게 되어있어 매우 짰다. 그래서 이번엔 물에 한번 씻은 뒤 칼집까지 내어 오븐에 구워주었다. 밥과 함께 먹으면 기가 막힌 정도의 염분이 되었다.


 동생에게 밥을 먹이고 총 세 명이서 소파에 앉아 아이돌 영상을 찾아봤다. 이렇게 적고 보니 급격히 밀려오는 자괴감.


 오늘은 형과 가슴을 하는 날이었다. 체육관 가는 길에 몬스터를 한 캔 사서 나눠마셨다. 들어가서 스트레칭을 하고 바로 플랫 벤치를 했다. 3주 만에 하는 벤치프레스. 저 멀리서 홍콩인으로 보이는 아리따운 여성분이 완벽한 자세로 데드를 치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포니테일 하고 껌 씹으면서 운동하는게 그렇게 멋있을 줄이야. 나는 결국 집중에 실패해 80kg 들 걸 75kg 밖에 들지 못했다. 웃음이 절로 나왔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다른 사람들도 그 분에게 말을 많이 걸어댔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 분들은 자신감이라도 있지 나는 그것도 없었다. 하하.


 그 후엔 플랫 머신(?), 인클라인 벤치 머신, 인클라인 덤벨 프레스, 플라이 머신 각 3~4회 해주고 사이드 레터럴 레이즈를 후식으로 먹어주었다. 무산소를 했더니 유산소가 너무 땡겨 형을 버리고 스텝박스를 해주었다. 오랜만에 하니 힘들면서도 개운함이 느껴졌다. 역시 컨디셔닝은 필수다. 그 후론 쉐도우 및 샌드백 좀 쳐주고 끝냈다. 아~ 스파링 하고싶다!


 헬스장에서 나왔는데 형이 말했다.

"어 나 휴대폰 안에 두고 왔나봐. 들어갔다 올게."


 시간이 지나도 형이 오지 않길래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형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


 이 사람도 어디 하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까먹고 어제 안찍어서 오늘 찍었다 하하

 누나가 복숭아 먹고 싶다고 한 게 기억나 오는 길에 식료품점에 들렸다. 어라? 복숭아가 없다. 그래서 사라는 복숭아는 안사고 형이랑 내가 먹고 싶은 것만 잔뜩 샀다.


타바스코 소스 : 스리라차 소스가 없어 산 타바스코. 오리지널로 사려다 재미 없어서 갈릭으로 사봤다.

서울 김치 핫소스 : 형이 츄라이 해보자며 사봤다. 조금 신데 맛있다. 사실 맨날 쌀밥에 고기만 먹으면 뭐든 맛있다.

퀘이커 시리얼 : 치리오스를 사람들이 많이 먹는대서 시도해볼랬는데, 당분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이걸 샀다. 나는 단 걸 좋아하지 않는다.

치토스 맥앤치즈 플레이밍 핫 : 형이 먹어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것. 아직 안먹어봄.

캠벨 수프 : 앤디워홀 작품과 똑같은 걸 찾았는데 없어서 먹고싶은 걸로 샀다.

마카롱 : 누나 출근할 때 도시락에 후식으로 넣어가라고 스윗한 남정네들이 사다줌.


 입주 첫 달이라 셋 다 월세를 똑같이 냈다. 마스터룸, 세컨룸, 거실 중 누가 어딜 쓸 지 정해진 게 없어 매일 저녁마다 목숨을 건 게임을 한다. 물론 거실만 아니면 된다. 사실 거실도 그렇게 불편한 건 아닌데, 아직 소파만 있기 때문에 비교적 선호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참 다양한 게임을 했는데, 오늘은 프로틴 무게 맞추기였다. A가 특정 무게를 말하면 B와 C가 최대한 그 무게에 가깝게 프로틴을 퍼면 된다. 그 후 오차를 기록한다. 이제 B가 말하고, C가 말하고... 개인 별 오차를 모두 더해서 적게 나올 수록 순위가 높아지는 게임이다. 형은 꼴등을 해 거실에 자게 되었으며 나와 누나는 2차전에 돌입했다.


 바로 수프캔 굴려서 병 넘어 뜨리기. 쉬워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근데 이거 어렵다. 캔 안에 내용물도 있고 바닥도 카펫이라 여간 똑바로 굴리는게 어려운게 아니다. 각각 스무번 쯤 한 뒤에야 승자가 결정됐다. 바로 나의 승리. 마스터룸은 나의 차지였다.


 아까 사 온 퀘이커에 프로틴 파우더를 넣어서 먹었다. 탄단지가 완벽히 들어간 음식 완성. 먹으면서 생각해봤는데 그냥 내가 거실에서 자기로 했다. 형은 키가 커서 소파를 살짝 불편해 하고, 누나는 넓은 화장실을 좋아해서 마스터룸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거실에서 처음 자봤는데 밤늦게 작업하기에 소파가 너무 편해서 만족감이 높았다. 물론 나도 침대와 프라이빗한 공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큰 상관이 없다면 행복 총량을 늘리는게 가장 좋지 않은가? 소파도 나한테 은근 맞는 것 같으니.


 누나는 넓은 화장실을 써서 좋고, 형은 침대에서 자서 좋고, 나는 작업하기 편해서 좋고. 불행한 사람 없는 이상적인 공리주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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