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28일 차
지긋지긋한 얘기지만 오늘도 아침은 기침에 절어 있었다. 웃긴건 집에서 나오기만 하면 기침이 멎는다는 것. 정말 집이 문제인걸까? 어쨋거나 오늘은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다. 누나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랜빌 아일랜드에 놀러가자는 말을 뿌리치고 집에서 CV를 쓰려고 했으나, 장을 보러가자는 말에 함께 나섰다. 이건 모두의 몫이니까.
누나와 로히드(Lougheed)역에 있는 월마트에 들렸다. 누나는 '스크럽'이라는 의료용 옷도 살 겸 간다고 했다. 팝콘과 치즈, 과자 등등을 샀다.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나에게 음식이 넘쳐나는 이 나라만큼 재밌는 곳도 없는데, 지금 당장 수입원이 없으니 자신있게 사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 조금 속상하다. 한국에선 2~3천원 더 주더라도 먹고 싶은 것 먹었는데... 가끔 비싸지 않은 먹을거리에 돈으로 연연할 때면 서글프다.
로히드는 내가 사는 버나비(Burnarby)와 코퀴틀람(Coquitlam)의 경계에 위치해있는데, BC주에서 한인상가가 가장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밴쿠버의 가장 큰 한인가게 '한남마트'와 'H-마트' 중 전자가 사진에 보인다.
이곳의 한인 가게들은 왜 '홍대'라는 이름을 자꾸 붙이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뉴욕OO 같이 작명하는 것과 비슷한 거겠지. 우리는 H마트로 향했다. 대부분의 간판이 한국어라 어색하면서도 편안했다. 한인 빌리지라는 정직한 이름이 귀여워 사진을 찍어봤다. 참고로 저 왕가마라는 가게는 누나가 조프리에 갈 때 태워주셨던 드라이버분이 가장 좋아하는 가게라고 한다.
사실상 처음으로 한인마트에서 장을 봐보았다. 다른 가게들보다 비싸고, 특히 한국보다는 훨씬 더 비싸지만 한국 제품들을 살 수 있어 좋다. 우리는 오뚜기 카레 약간 매운맛, 고춧가루, 라면 이것저것, 참기름, 진간장 등등을 샀다. 제일 위에 보이는 연어뼈는 연어를 손질하고 남은 자투리 부분들을 싸게 파는 것이다. 미운우리새끼에서 이상민씨가 연어 머리 먹던게 생각나 사보았다. 예전에 일식집 일할 땐 사장님이 고양이들 주던 부위인데... 쩝.
그래도 스윙칩 볶음고추장맛 보통 크기 하나가 7000원이었던 건 좀 충격이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개인적인 사유로 지금은 연락을 안하지만. 그 친구는 학창시절을 아프리카에서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한국으로 넘어온 친구였다. 사진에 보이는 과자를 그렇게 좋아한다며 가끔 해외직구 해먹는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내가 해외구매대행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올린 제품이 이거였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하나도 안 팔렸다.
그리고... 먹어보니 그닥이다. 하하.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경유할 때였다. 보안 검색 줄을 서있었는데 앞에 서있던 백인이 엄청 큰 요거트 통을 꺼내어 마구마구 먹었다. 신기했다. 여기서도 가끔 그런 광경을 봐서 '요거트가 그렇게 맛있나?'라는 궁금증에 나도 사봤다. 나는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자그마한 것으로 샀다. 한국이랑 별 차이는 없었다. 그나마 좀 요거트 본연의 맛에 집중한 느낌. 물론 이것도 제품마다 다를테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스테인리스 젓가락이 생겼다. 역시 나무보단 쇠지... 그리고 오늘 사온 새우와 연어뼈는 버터를 발라 오븐에 구워주었다. 오븐 하나로 삶의 질이 얼마나 올라가는지 모르겠네.
어제 남은 야채들에 치즈를 올렸다. 저 라면은 짜슐랭이라는 오뚜기 제품인데, 면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맛은 짜파게티와 비슷했다. 새우와 연어는 소금을 조금 찍어 입에 넣었더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사실 형이 오랜만에 외식을 하자고 했는데, 집에서 먹길 잘했다. 외식보다 나았다.
오늘 방정하기 게임은 도마로 셔틀콕 많이 쳐올리기. 처음에 내가 꼴등 했는데, "묻고 떠블로 가!" 외치고선 성공, 재경기 후 1등을 차지했다. 오늘도 마스터룸이다. 후후.
아침부터 외할머니와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끼니는 잘 챙겨먹고 건강을 괜찮냐며. 보통 이런 카톡이 오면 전화를 하곤 하는데 기침도 하고 목소리도 살짝 변해서 할 수가 없었다. 괜히 했다가 기침이라도 하면 걱정하니까. 그냥 잘 챙겨먹는다고 (이건 진짜다). 별 일 없이 잘 지낸다고 답했다. 그래도 오늘은 기침을 정말 많이 덜했다. H마트에서 사온 생강차 덕분이려나. 아무튼 얼른 나아서 건강하게 걱정 없이 전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걸 다시금 깨닫는다.
이제 정말 정신차리고 일을 구해야한다. 일을 구해야한다. 일을 구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