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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원 Oct 13. 2022

부모님께 IR을 했다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29일 차

 아침에 일어나 레쥬메를 써서 2곳 정도에 지원했다. 아무 것도 없이 인턴부터 시작하기보단, 간단한 알바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을 가지니 지원하기가 쉬웠다. 집에 고기가 떨어져 코스트코에서 장을 봐왔다. 왜 장을 매일같이 보냐고? 집에서 밥을 먹는데 식사량이 어마무시하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코스트코를 갔다가 중고 바리깡과 청소기를 모두 가져오려고 했다. 그런데 코스트코를 다 왔을 때 쯤 형이 회원카드를 두고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의 계획은 코스트코로 끝나게 되었다.


 재밌는 일이 하나 있었다. 지도에서 나의 집과 코스트코를 직선으로 그어보면 중간에 철길이 나온다. 횡단이 금지된 철길이라 우리는 매번 돌아간다. 가능만 하면 10분 걸릴 걸 20분씩이나 걸려서 가는거다. 특히,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올 때면 시간과 체력은 더 많이 소비된다. 그런데, 오늘 다리를 건너면서 철길을 보는데 사람이 한 명 지나갔다. 잘못 본 건가 싶어 형한테도 말했는데 진짜였다.


"미친놈이네..."


할 때 한 명이 더 지나갔다.


'뭐지...?'


철길 건너편을 확인해보니 심지어 길이 만들어져있었다. 이것이 북미인가.


 월세 납부일이 다가올 수록 자금의 압박은 더 심해졌다. 형과 나는 1~2달러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다. 심지어 대용량이라 한 번 사용할 때 몇센트 차이밖에 안나겠지만서도. 한번 왔을 때 많이 사는게 시간을 절약하는 일이라 잔뜩 샀다. 차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수만번 생각했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올 때 보통 4~500만원 정도를 초기 정착금으로 가져온다. 이건 당연히 비행기값 등을 제외하고 월세, 생활비 정도만 따졌을 때 2달을 버틸 정도의 돈이다. 어떻게 알았냐면... 구글의 검색결과가 말해줬다. 하지만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는 호주에 비해 사람이 적어 정보도 적다. 심지어 코로나 시즌이 지나는 동안 정보는 더 없어졌다. 4~500만원은 내 생각에 2~3년 전 기준이다. 그 당시 식당 메뉴판을 보면 지금보다 20% 정도는 저렴하다. 물가가 그만큼 올랐다는 뜻이다. 전세계 경제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캐나다가 타 국가들보다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상승시킨 탓도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내 생각에 지금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600만원 이상은 준비하는게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에 기차를 봤다. 체감상 3분은 지나갔던 것 같다. 이게 대륙의 스케일인가.


 카펫을 청소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중고 청소기를 두 개 예약했었다. 진공 청소기와 습식 청소기. 후자를 누나가 오늘 퇴근 길에 가져왔다. 판매하던 아주머니는 누나가 딸처럼 느껴져 집까지 차로 데려다주셨다. 어라. 막상 들고와보니 습식 청소기가 아니고 '필터를 물에 적셔 사용하는' 청소기였다.


 마침 롤랜드가 우리에게 판매한 진공청소기의 흡입력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즈음이라 큰 상관은 없었다. 그리고... 성능이 정말 좋았다. 누나가 다시 전화해서 사용법을 물어봤을 때 들려오던 대구 사투리가 기억에 남는다.


 거실 1/3을 대강 밀었을 때의 먼지다. 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일이니?


 오늘은 레그데이였다. 형은 허리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레그 익스텐션과 스쿼트만 하고 복싱을 했다. 라틴계로 보이는 스무살이 말을 걸어왔다. 내 복싱 스타일이 좋다고. 나보고 몇살이냐고 물었다.


"I'm 24."

"U-hoo Such a young man"

"How old are you then?"

"20"

"...?"


 신기한 놈들 천지다.


 그러다 저기 사진 속 거울 뒤로 보이는 흑형이랑 샌드백을 같이 치게 됐다. 뭔가 세게 쳐야할 것 같아 강도를 높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맨손이고 쟤는 글러브였다. 다음에도 같이하자고 했더니 인스타를 줬다. 괜히 프로자격증 못따고 온게 아쉬워졌다. 그러면 어깨에 힘 좀 실렸을텐데 말이다.


 오늘 게임은 플랭크였다. 역시 바디빌더의 한계일까. 내가 1등, 누나가 2등, 형이 3등을 했다. 


 이 게임이 끝나고 엄마와 전화를 했다. 일종의 IR이었다. 부모 자식 관계는 가끔 이런 때가 온다. 집 안부를 묻고, 내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다. 집에서 내가 필요한 지원을 해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일에 부담감을 느껴 보통 그냥 혼자 감내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원은 받아놓을 수 있을 때 받아야한다. 캐나다에 있을 때 돈이 들더라도 더 많은 것을 경험하는게 내 인생에 이롭기 때문이다. 돈은 모으고, 지키고, 불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재적소에 쓰는 것도 중요하다.


 장장 40분이 넘는 페이스톡이 끝났다. 지원금을 받았다. 대화는 긴장되지 않았지만, 끝나고나니 자금압박이 잠시 사라지면서 온몸에 힘이 빠졌다.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일 빨리 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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