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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원 Oct 18. 2022

아빠 친구의 친구는 남 아닌가?

정답 : 아니오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33일 차

 늦게 일어나 친구에게 열라면을 끓여 주었다. 월마트에서 산 체다 치즈를 넣었는데, 역시 한국같은 맛은 안난다. 나는 집밥 해장을 좋아해서 식단을 먹어주었다. 저번에 사온 냉동 소고기 패티가 예상외로 정말 맛있어서 만족 중이다.


 오늘은 드디어 거실에 놓을 침대를 가지고 오는 날이다. 이미 집에 있는 두 침대가 퀸사이즈여서 같은 것으로 구매했다. 지금까지 구하지 못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운송. 차가 없어서 침대를 집까지 가져오질 못한다.


 이 곳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아빠 친구의 친구분(김씨 아저씨)께서 전화하셨다는 글을 적은 적이 있다. 아저씨는 자주 연락이 오셨다. 밥 한 번 먹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댓가없는 순수한 관심과 배려였다. 마침 침대 매트리스 나눔이 아저씨 동네인 랭리(Langley)에서 올라왔다. 아저씨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와준다고 하셨다. 이렇 듯, 대형 폐기물은 한국처럼 수거비용이 있어 가끔 나눔이 올라온다.


 로히드역에서 555번 버스를 탔다. 생애 첫 2층 버스였다. 사실 너무 피곤해서 설레임은 무슨, 그냥 잤다. 에어컨이 너무 쌔게 나와서 추웠다. 종점에 내려 다시 501번 버스를 타고 좀 더 갔다. 역시 외곽지역이라 그런지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해외 같았다. 누나 말에 의하면 2층 맨 앞자리에 타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고 한다.


 목이 말라 편의점 같은 곳에 들어갔다. 이 나라 편의점은 가끔 맥도날드 음료기계 같은 것을 구비해두는데, 여긴 종류도 많고 슬러쉬도 나와서 찍어봤다. 애리조나 수박맛을 샀는데 캔 색깔에 보이는 붉은색 맛이 났다. 역시 진생앤허니 맛이 최고다.


 판매자분 집에 도착했을 때 김씨 아저씨는 이미 주차를 하고 있었다. 매트리스와 지지대, 헤드보드는 너무 커서 루프에 올렸다. 이 외에도 의자, 스탠드램프, 협탁 같은 것들도 얻어왔다. 정말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드리고 왔다. 판매자분 집이 엄청 컸던게 기억난다. 궁전같았다. 


 "짜장면 좋아해?"


 이사하고 짐을 옮기면서 짜장면 먹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일종의 코리안 의식이니까. 그런데 파는 곳이 없었다. 오리지날 짜장면은 한국 짜장면과 달라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인이 추천하는 짜장면이라... 심지어 오래 사신 분이 추천하는 짜장면... 저 질문을 듣자마자 홀린 사람처럼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집 가기 전에 짜장면 먹고 가자."



 메뉴를 보고 깜짝 놀랬다. 짬뽕, 짜장면 사진을 여기서 본게 처음이었다. 형과 나는 눈이 뒤집어졌다. 아저씨는 짜장면을 드시고, 형과 나는 짜장면과 가리비 짬뽕을 시켜 나눠먹었다. 사실 점심을 늦게 먹어서 배가 그닥 고프지 않았다. 절대 실수하면 안될 것 같은 아저씨와의 관계가 나를 정신적으로 압박하기도 했고. 그런데 한 입 먹자마자 며칠 굶은 사람처럼 해치웠다. 아저씨가 이 곳 단골이라 군만두도 서비스로 받았다. 직접 만든 군만두. 감정을 제외해도 음식들이 한국의 웬만한 중국집보다 맛있었다. 추억의 물병까지.

 랭리는 밴쿠버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도심쪽으로 가려면 차를 타는게 제일 깔끔했다. 아저씨는 아들을 태워서 가자며 본인 집으로 가셨다. 평화로운 동네. 봉하 시골에서 자란 분답게 자그마한 텃밭을 취미로 가꾸셨다. 방울토마토, 청양고추, 덩굴, 포도나무 같은 것들이 있었다. 우리 아빠도 이런 걸 좋아한다. 역시 사람은 추억으로 살아간다. 다음에 삼겹살 구워먹자면서, 청양고추 바로 따먹으면 된다고 하시는 말이 얼마나 정겹게 느껴졌는지.


 아저씨는 결혼을 늦게 하셨다고 했다. 첫째는 어릴 때 한국에 있었고, 둘째부턴 여기서 쭉 컸다고 하셨다.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꽤 젊게 사시는 듯 했다. 액티비티도 좋아하고, 취미도 많은 그런 분이었다. 말씀도 정말 재밌게 하시는. '콜린'이란 이름의 첫째 (한국 이름을 까먹었다...)를 만났는데 성격이 정말 좋았다. 호기심이 많은지 우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올해 고3이라고 했는데 원하는 학교를 간다면 좋겠다.

 아저씨와 아들이 도와줘서 물건을 순조로이 내릴 수 있었다. 형과 나는 어떻게 둘이서 집까지 이 크고 무거운 것들을 옮길까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집 들어오자마자 뻗었지만... 잠시 누워있다가 조립했다.


 헤드보드가 생각보다 커서 테라스에 박아뒀다. 대신 풋보드를 헤드보드처럼 이용했다. 배치도 이리저리 옮겨보니 합리적인 구성이 되었다. 뿌듯했다. 저녁 만들어 먹을 힘이 없어 피자를 시켜먹었다. 우버이츠는 배달료가 굉장히 적은데, 애초에 음식값에 다 포함되는 듯했다. 가서 먹는 것보다 비쌌기 때문이다.


  나르코스를 보다가 야식으로 맥앤치즈를 해먹었다. 역시 정보 전달하는 영상 퀄리티는 한국만한 곳이 없다. 파스타 면을 삶은 뒤 우유와 함께 끓이고 버터와 치즈를 넣었다. 첫 시도치고 맛있었는데 뭔가 심심한 와중에 누나가 "불닭볶음면 소스 넣으면 맛있겠다." 라고 했다. 저번에 하나 남은게 있어 넣었더니 하나님 맙소사. 오늘부터 나의 시그니쳐 야식이 되었다.


 뜻밖의 배려를 너무 많이 받아 아빠한테도 전화해서 감사하다고 했다. 과분한 사랑을 받은 하루였다. 나도 아저씨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형 그거 바벨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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