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원 Oct 18. 2022

그는 선뜻 전송을 누르지 못했다

3년을 함께한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34일 차.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밀린 브런치 글들과 레쥬메를 쓰기로 한 날이다. 지루해질 쯤 나와서 운동을 했다. 형은 허리가 아파서 집에서 쉬었다. 정말 아쉬워했다. 군대에서 그 기분을 느껴봐서 나도 안다. 근성장이 삶의 낙이 되면, 통증으로 운동 못하는게 정말 서럽다는 걸. 그래서 어떻게든 깔짝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깔짝이면 오히려 회복이 늦어질 뿐이다. 나는 형을 뜯어 말려 집에 놔뒀다.


 옆에서 파멸적인 눈빛을 보내는 사람 없이 운동 하는게 오랜만이었다. 나는 웨이트를 주구장창 하는 스타일이 아니므로 풀업과 랫풀 5세트씩 해주었다. 그 뒤엔 복싱 스텝 연습으로 종아리를 해줬다. 쉐도우 및 샌드백은 당연한 루틴.


 운동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FAT BURGER 이라는 곳에서 햄버거를 샀다. 캐셔가 인도인이라 발음을 알아듣기 어려워 시간이 좀 들었다. 이럴 경우 도의 상 팁을 줘야한다. 햄버거 세트 두 개에 푸틴을 하나 사면서 37달러가 나왔는데, 팁을 3달러 줘서 총 40달러 정도 나왔다. 점점 이 곳 물가에 적응을 하는지 괜찮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소고기 패티 질이 정말 좋았다. 그렇기에 의도한 건진 모르겠지만 패티 맛이 햄버거를 지배했다.


 형은 3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 마지막 편지를 적는데, 누나까지 합세해서 가족사업처럼 글 쓰는 것을 도와줬다. 나는 옆에서 슬픈 노래를 틀어주며 사악하게 웃었다. 차라리 옆에서 웃으며 슬픈 노래 틀어주는 사람 있어야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연애의 끝은 헤어지는게 슬픈게 아니라, 그 사람을 더 이상 못 본다는 것이 슬프다.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냈는데.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이 지은 '보통의 존재'에 나오는 글이 생각났다. 제목은 '프로포즈'다. 에휴. 나는 연애 못하겠다~




사랑하자는 건 헤어지자는 거지, 안그래?
너와 내가 사랑을 안 하면 평생 볼 수 있는데,
뭣 때문에 사랑을 해서 일이년밖에 안 봐야 돼?

나는 이게 납득이 안가.
나는 그래서 너의 프로포즈가 이해가 안가.



 이틀 전이었을까. 카카오 서버에 문제가 생기면서 주로 사용하던 티스토리와 브런치 모두 먹통이 되었다. 내가 공들여온 기록들이 다 날아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데이터 이원화를 했으리라 당연히 생각했지만서도. 상황이 이러니 원래 일기를 직접 손으로 쓴 이유가 떠올랐다. 사라질까봐. 자기 PR과 개인적인 기록의 영역에서 시간적 한계로 전자를 선택했지만, 잠시간 후회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와 동시에 이렇게 매일을 기록해서 공개적인 곳에 올리다보니,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눈치가 보인다. 하루를 여유롭게 보내면 적을게 없어져 나태하게 보이진 않을까...하고. 바쁘게 살아야하는 현대 사회의 엄격한 기준으로 보면 좋다. 반면에 개인의 삶에는 그리 달갑지 않은 그런 느낌. 심지어 이 곳에 적응하는 만큼 한국사회와의 차이에서 오는 통찰이 적어지고, 일을 하게 되면 규칙적인 삶을 살며 적을게 더 없어지겠지. 이렇게 매일매일 기록하는 시스템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카카오와 눈치 얘기는 스쳐가는 생각을 메모해놨다가 적어보았다. 문득 생각나는 문구가 있어 아래에 적어본다.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Reinhold Niebuhr)의 기도문이다.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 친구의 친구는 남 아닌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