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감가상각과 자학의 악순환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41일 차.
한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다. 마음이 정말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직에 대한 압박 때문이다. 링크드인과 인디드를 통해 10곳은 충분히 넘는 곳에 인턴 포지션으로 지원했지만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았다. 특히 인디드는 플랫폼 내에서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률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인턴 자리 하나 당 최소 20명씩은 지원한다. 영어도 Fluent 하지 않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데 20명의 경쟁률을 뚫을 수 있을리가 없다. 그래서 사무보조(Administrative Assistant)도 이곳저곳 지원해보았으나 똑같았다.
나에게 2년짜리 비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한다. 그러면 이렇게 조바심이 들 이유도 없을 것 같았다. 300일 남은 사람이 일주일 남은 사람처럼 무엇이든 더 경험하려고 몸부림 칠 일도 없었을 듯 하다. 카페나 식당부터 차근차근 경험과 언어를 쌓아 퀘스트를 클리어 하겠다고 그럴싸한 계획도 세울 수 있었겠지. 스스로를 향한 기대의 성곽이 시간으로 풍화된다. 끊임없는 감가상각과 자학의 악순환. 아, 너무 내려왔나.
어플을 통해 몇몇의 이성도 만나보았다. 그 중에는 정말 괜찮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내년 9월에 떠나야하는 이방인이었다. 또, 또 이방인이다. 미래가 보이는 연애를 해야한다는데, 그 미래가 지구 반대편에서 전파로 사랑을 주고받아야 하는 장면이라면 선뜻 다이빙할 수가 없다.
엄마는 어떤 경험이든지 범법 행위만 아니면 모두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철학을 항상 가슴에 두고 살아왔다. 지금은 위로부터 내려온 내 철학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상처는 흉터를 남기니까. 매 번 이렇게 브런치에 와서 구직이 되지 않는다고 징징대는 내 모습도 그리 좋진 않다. 글을 쓰고 속이 좀 후련하면 성공하지 못한 자의 구차한 정신승리 같다. 내가 이 먼 나라에서 왜 이러고 있을까. 친구들이 잘 지내나고, 재밌지 않냐고 연락이 올 때 마다 선뜻 답장하기가 어렵다.
레인쿠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흐린 구름에서 찬 비가 줄곧 내린다. 왜 사람들이 밴쿠버의 겨울은 Depressed 하다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습한 겨울의 공기를 들어마시면, 누구나 낮아진다. 오늘은 목욕탕이 사무치게 가고 싶었다. 동네 맛집의 동태탕과 잔치국수도 생각이 났다. 돼지찌개도 맛있겠다. 뭐 조금 힘들다고 그런 소리 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도망가고 싶단 생각이 종종 든다.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일단 집으로. 내 방으로. 늘 앉던 자리에서 늘 보던 모니터를. 늘 보던 사람들과 늘 먹던 음식을. 늘 쓰던 언어를.
* 글 쓰라고 말해준 '예원'에게 고마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