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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원 Nov 16. 2022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찾아 쓸까

무형의 벽

2. 구직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무엇이 더 슬픈가? 내 성격으로는 후자만한게 없다. 그래서 가끔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린다. 이것만큼은 해내야겠다고.


 당신이 회사 사장이라고 상상해보자. 다음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채용할 것인가?

a, 비자 만료가 1년 채 남지 않아서, 오래 근무 시키려면 사측에서 비자 지원 필요

b.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함


 당연히 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용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어떤 경우일까?

a. 지원자가 이 사람 밖에 없을 경우

b. 압도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을 경우

c.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

d. 인건비가 저렴한 경우


 그 사람이 나다. 그런데, 나는 능숙하지 않은 영어를 감내할 만큼 압도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면 내가 찾아야할 일은 '영어에 능숙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다. 식당이나 카페, 건설노동직 같은 것들이 있겠다. 그런데... 그 쓸데없는 자존심이 허락하지가 않았다. 처음엔 인턴직을 찾아봤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내 눈은 인턴에서 사무보조로, 사무보조에서 정비공으로, 정비공에서 식당과 카페로 내려갔다. 인턴과 사무보조 공고 하나에 적게는 30명 많게는 150명씩 지원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많은 사람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약 60 여 개의 이력서를 넣었음에도 아무 곳에서 연락이 오지 않던 날이었다. 자존감과 통장이 동시에 밑바닥을 친 아침에 뜬금 없는 메일이 왔다. Trane Techonology 라는 회사였다. 나는 나중에 기술영업을 해야겠다고 생각 했었는데, 유일하게 넣은 기술영업 인턴에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 하나님 맙소사. 이게 가능한 일이었군요. 곧이어 하나의 메일이 더 왔다. 사무보조 직무에 서류 합격했다는 메일.


 둘 다 인터뷰를 봐야했다. 그러면 탈락할게 뻔했다. 업무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받고, 서류를 작성하는 일인데 영어를 잘 못해서 될 리가. 그런 일들은 회사의 얼굴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고객센터에 전화했는데 "다시 한번만 말씀해주시겠어요?(Sorry?)"를 반복하는 상담원이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 회사가 좋게 보일 리가.


 다행히 Trane Technology 의 면접은 영상을 녹화해서 보내는 것이었다. 스크립트는 영어를 잘하는 룸메이트 형이 도와줬다. 2분 짜리 영상 총 4개를 찍었는데 3시간은 걸린 것 같다. 하나 찍으면 온 몸에 힘이 빠져 이틀에 걸쳐 찍었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사무보조는 TechCare Online 이라는 회사였다. Virtual interview를 하자고 했다.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온라인 마케팅 서비스를 하는 곳이었는데, MARI(Misdiagnosis Association and Research Institute)라는 연구기관의 자회사였다. 미국에 꽤 큰 기관. 이게 역시 대륙의 스케일일까. 면접을 준비하면서 이 회사가 '대체 왜 날 보자고 했을까'에 대해서 고민했다. 광고대행사와 임플란트 재료 회사 재직 경험이 같이 있어서인 듯 했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


 면접은 3분만에 끝났다. 망했다는 뜻이다. 여기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지금 어떤 교육기관에 있는지 물어보더니 한국인 것을 확인하고 마무리 지은 듯 했다. 그리곤 나에게 Volunteer Position 에 지원해보라고 권유했다. 허망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다 했다면 모를까. 그냥 벽을 느껴버렸다. 멍하니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



 여기까지가 답도 없는 상황에 무작정 적다가 손 떼버린 글이다. 지금은 일을 구했다. 이 때 크게 도움 받았던 영상을 하나 링크한다.

'바닥에서 계속 올라가려고 해도 다시 바닥. 그게 바닥을 다지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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