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맘 관찰일기_220509
많은 분야가 그렇듯, 길고양이 돌봄의 세계도 끊임없는 고민과 가치 판단의 장이다. 은근한 경쟁과 암투, 믿음과 서운함 같은 온갖 정치와 감정의 스타디움이기도 하다.
이 길고양이는 구조를 할 것인지 밖에 두고 약을 먹일 것인지, 같이 구조한다면 누가 책임자가 될 것인지, 치료만 하고 방사할 것인지 입양처를 알아볼 것인지, 그동안 보호는 어디서 하며 비용은 누가 댈 것인지, 입양 신청자가 나타난다면 그곳에 보낼 것인지 다른 곳을 더 기다려 볼 것인지. 매 순간에 고민과 선택이 강요된다. 충분히 고려하느라고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다. 앞에 있는 고양이에겐 당장의 생활과 생명이 달려 있으니까.
그러니 일단 하고서도 후회되고 미안한 일은 당연히 많고, 심지어는 시간이 지나도 그게 잘한 일이었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지인들이나 동료 캣맘, 그리고 SNS에는 그중의 일부, 주로 결과에 가까운 일들을 공유하게 된다. 어떤 구체적인 사정과 고려사항이 있었는지 나열하는 건 구차한 일이 되기 쉬우니까. 오늘 보이는 건 "이렇게 되었답니다. 파이팅!"이라면 뒤에서 매일 생각하는 건 "어떡하지, 미쳐버리겠네ㅠㅠ"다.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잘못된 선택처럼 보이거나 의도를 의심하게 되는 일이, 그러니까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도 "저 사람 왜 저래?" 하면서 삐딱하게 보는 일이 없지 않지만, 웬만하면 "사정이 있겠지,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넘어가려고 한다. 행복한 캣맘은 한 마리의 고양이로 행복하지만, 괴로운 캣맘은 수만 가지 이유로 힘드니까. 보기에 이상해도, 모르면 조용히 하는 게 상책이다. 같이 고민하고 도와줄 게 아니라면.
그래서 비난을 위한 계정을 일부러 만들어, 특정 캣맘의 계정에 공격적인 댓글을 달고 다니는 정성이 퍽 갸륵하게 느껴진다. 자기도 캣맘인 건지, 캣맘 전부를 싫어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은 본인의 정의를 위해 행동한다고 믿겠지. 어쩔 수 있을까,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을.
길고양이를 돌봄 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더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이 세계에서도 똑같이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산다. 생각이 달라 다투기도 했다가 화해하고 서로 돕기도 한다. 고양이들이 서열 경쟁하느라 물고 할퀴고 쫓고 쫓기다가도 어느새 서로 그루밍해주고 같이 낮잠도 자는 것처럼. 다들 차마 다 하지 못한 말의 뒤에서 부지런히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