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는 길은 때로 너무 길어

캣맘 관찰일기_220510

by 정재광

진이 만든 길고양이 밥자리 중에서 우리 동네에 있는 곳들은 요즘 내가 관리하고 있다. 날씨가 좋아져서 크게 손을 안 대도 컨디션이 잘 유지되고 있다. 단 하나 어려움이 있다면 민달팽이들이다.


수풀이 우거진 곳이거나, 그런 곳이 아니라도 비가 온 뒤 촉촉한 날씨가 되면 어김없이 침공이 시작된다. 보통은 여름철에 제일 기승이지만, 몇 달 전에 옮긴 밥자리 하나는 벌써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키가 큰 풀로 둘러싸인 곳에 밥자리를 놓은 탓에 워낙 습도가 높게 유지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예년에 보지 못한 규모의 대군이라 밥자리에 갈 때마다 흠칫 놀란다. 심지어 아주 작은 새끼들도 많아서 우리가 달팽이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달팽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점성 물질이 남아서 밤에 라이트를 비추면 급식소 안팎으로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다. 결국 주변에 다른 자리를 찾기로 했고, 그때까지 이 급식소는 폐쇄하게 되었다.


자리를 옮기더라도 조치는 필요하다. 작년에는 급식소 밑에 벽돌을 쌓아 바닥으로부터 띄우기도 했고, 신기패 같은 제품도 자주 사용했다. 작년에는 소금물로 밥자리를 두르는 방법도 썼었는데, 비슷한 액체를 뿌려서 사용하는 제품도 나왔다고 해서 구해볼 생각이다.


달팽이가 해충으로 분류된다는 걸 작년에 사투를 벌이면서 알게 되었다. 해충이라. 당연히 사람 입장에서 해롭다는 뜻이다. 달팽이는 죄가 없겠지. 미안한 생각도 들고, 딜레마에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해치는 일이 없도록 가능하면 서로 만나지 않는 방향으로 하고 싶다. 어린날 무수한 위로를 받았던 노래의 주인공에게 이런 대접을 하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 부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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