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지역 길고양이 이야기 1
“이게 가성비가 그렇게 좋대.”
“아니 아니야, 이건 우리가 쓸 물건이 아니야.”
“이것만 있으면… 밥자리 전부 한 방에 정리할 수 있을 텐데…”
애써 모른 체하는 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은 2시간째 혼잣말을 해가며 스토어와 유튜브 채널을 오가고 있었다. 진이 보고 있는 물건은 10인치 무선 체인톱, 충전식 예초기, 그리고 전동 전지가위 따위였다. 우리 삶에 들어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원예 도구들. 아니 나중에 정원을 가꾸게 된다면 장만해 봄직한 친구들이겠지만 고양이들을 위해서 이런 것들을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진은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모두 지워버렸다가, 사용 후기를 보다가 다시 상품페이지를 정독하기를 반복하며 고뇌하고 있었다.
진이 이렇게 장비를 갈구하는 건 요즘 치르고 있는 풀과의 전쟁 때문이다. 부쩍 데워진 공기와 함께 거의 사람 키만큼 자라난 풀 때문에 애써 옮겨놓은 밥자리에 아이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을 안전한 밥자리로 옮겨야 했다.
진은 재개발지역에서 고양이들을 구하고 있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2년여 전 어느 날, 내가 약속에 조금 늦었고 시간이 뜬 진은 도로변에 보인 빈 건물을 살피러 안골마을로 들어섰다. 그리고 마을의 초입에 서서 부동산 사장님과 통화를 마친 진의 앞에, 시야를 가릴 만큼의 고양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제야 곳곳에 놓인 밥그릇과 숨숨집이 눈에 들어왔다. 오며 가며 챙겨주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리 깨끗한 환경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아무도 중성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진은 밥그릇 옆에 연락처를 남겼고, 그렇게 우연은 묘연이 되었다.
고양이들을 챙겨주시던 주민분들과 함께 TNR을 진행하면서 마을 전체에 수십 마리나 되는 길고양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개체를 확인하면서 대부분 중성화를 완료했지만, 정말 큰 문제는 바닥에 깔려 있었다. 이 마을 전체가 곧 재개발로 사라진다는 것. 지금까지는 다른 일들로 분주해 고양이들의 이주를 전면적으로 시작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더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주민 대부분이 이사를 나갔고, 고양이들은 남겨졌다. 철거 공사가 임박했다.
도심 지역의 경우 재개발이 시작되면 그 구역의 길고양이들은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옆 동네로 밥자리를 이주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전국의 여러 안골마을이 그렇듯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다. 공사 지역을 벗어나면 그저 산이다. 고양이들의 다음 보금자리는 산속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를 갑자기 낯선 장소에 데려다 놓으면 대부분 적응하지 못하고 생명이 위험해진다. 이십 미터, 삼십 미터씩 간격을 두고 밥자리를 옮겨 가며 시간을 두고 유도해야 한다. 산을 타며 길을 내고, 가파른 곳에 계단을 만들고, 땅을 다져서 급식소와 숨숨집을 설치하고, 비 맞지 않게 미니텐트를 씌우고. 진과 혜진 씨는 완연한 작업꾼으로 살고 있다.
처음에는 호미나 원예용 삽 정도로 가능했다. 갈퀴로 수북한 낙엽을 쓸어내고 흙바닥을 정돈해 근거리로 밥자리를 옮기니 다행히도 아이들이 잘 따라와 주었다. 하지만 풀과 나뭇가지들은 산에 가까워질수록 무성했고, 가볍게 잘라내는 걸 비웃듯 하루 만에 무섭게 자라났다. 여름이 오는 속도란 이런 것이구나. 무엇보다 우거진 수풀에 불편을 느낀 고양이들이 다시 익숙한 영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진의 장비 고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진은 즐거워 보인다. 매일 땀에 젖고 벌레에 물리고 여기저기 쓸린 상처가 나는 와중에도,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안 아픈 곳이 없는 몸인데도, 어쩐지 낯빛은 한층 더 살아나는 것 같다. 분명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 이 일에 덤벼들어, 아이들 걱정과 앞으로의 고민에 짓눌리면서도 사람이 저렇게 맑을 수 있을까.
중학교 한문 시간에 제일 처음 배운 사자성어를 기억하고 있다. 정말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은 사람의 꾸준한 노력이 산을 옮긴다. 선생님은 설화까지 보태가며 어떻게든 교훈을 주려고 애쓰셨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터무니없는 소리로만 들렸다. 산을 어떻게 옮겨.
그게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요즈음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내 눈으로 진과 혜진 씨가 매일 조금씩 산을 옮기는 걸 지켜보고 있으니까. 마을 안에 있던 고양이들의 터전을 산기슭에 새로 마련해 고양이들을 모두 이주시키는 이 일은 그야말로 산을 옮기는 일이다. 고양이들의 산을. 그러니까, 산을 옮기는 데에 체인톱이나 예초기를 갖추는 게 대수겠는가.
한 삽 한 삽, 한 걸음 한 걸음이 어떻게 산을 옮길 수 있는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땀 흘리는 진의 얼굴에 서려있는 단단한 믿음은 내게도 잘 보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진을 믿는 것. 진이 그려가는 그림에 나도 터치를 더해 보면서 두려움보다는 설렘을 느껴보는 것. 그리고 전해 보는 것.
고양이들의 산이 새로 솟아나는 그 어리석고도 아름다운 과정을 앞으로 천천히 옮겨보려 한다. 한 삽 한 삽을 따라, 한 글자 한 글자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