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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광 Jun 03. 2024

오칠이가 돌아왔다

스타가 된 떠돌이 개 이야기 1

알람 소리가 방안을 깨웠다. 진과 나는 서로의 부스스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일어나 얼굴에 물만 묻히고 신발을 눌러 신었다. 상황을 먼저 알아챈 오칠이의 꼬리가 봄바람을 불러올 듯 살랑대고 있었다. 길에 나서자마자 살갗에 내리쬐는 햇살과 코에 닿는 풀 냄새가 반가웠다. 거의 다섯 달만에 우리 셋이 나서는 아침 산책. 오칠이가 돌아왔다.




오칠이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목줄도 없이 끈도 없이 혼자서 진의 동네를 서성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가까이에 오지도 않고 금방 도망쳐 버렸다. 사진을 찍어 당근 커뮤니티에 올려보려 했더니 웬걸, 이미 오칠이의 게시물만 여러 개였다. 다들 혼자인 이 아이를 걱정하며 보호자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저녁, 운전을 해서 집 앞에 도착한 진이 발견한 건 나란히 쪼그려 앉은 나와 오칠이였다. 나는 진을 마중 나왔다가 오칠이를 다시 만났고, 가만히 앉아서 불러보는 내 앞에 오칠이가 다가와 주었다.


그날을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진과 내가 가지고 있던 간식을 가지고 오칠이에게 건네는 모습을 보고, 산책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미 여러 날 동네를 누비던 오칠이의 존재를 알고 있던 분들이었고, 공교롭게도 모두 커플이었다. 길 잃은 강아지를 둘러싼 네 커플은 얘를 어떡하냐며 다 같이 발을 굴렀다.


일단은 다들 가지고 있던 간식에다가, 근처에서 급히 사 온 것까지 종류별로 총동원했다. 몇 가지를 잘 받아먹어 주었지만 쉽게 만지거나 안을 수는 없었다. 가장 잘 먹는 간식을 들고 진이 건물 안에서 유인하는 동안 내가 자동문이 닫히지 않도록 버튼을 누르면서 쪼그려 앉아 있어 보기도 했다. 오칠이는 문 앞까지 와서도 마지막 한 발을 내딛지 않고 돌아서기만을 반복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훌쩍 흘렀고, 결국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헤어졌다. 여전히 길 위에 있는 오칠이를 두고서.



그게 작전 실패가 아니었다는 건 다음날 바로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오칠이가 진의 집 앞에 머물기 시작했다. 진이 아침에 집을 나서면 오칠이는 항상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손에 닿는 거리를 잘 허용해주지는 않았지만 반가운 티를 내며 진을 따라왔다. 모닝커피를 산다는 핑계로, 눈 뜨자마자 오칠이를 만나러 나가는 게 진의 일과가 되었다. 날마다 인사를 나누는 동안 진과 오칠이의 거리는 몸과 마음 모두에서 조금씩 좁아졌다. 이윽고 오칠이는 진을 따라 선선히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보니 임보가 시작되고 말았다. 보호자를 찾거나 입양 홍보를 한다지만, 그전까지는 집에서 보호를 해야 했다. 실내 배변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오칠이를 위해 최소한 아침저녁 두 번은 반드시 산책을 해야 했다. 사무실과 길 위의 고양이들을 챙기고 사업화를 위해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진이 강아지 한 마리를 더 책임져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화가 났다. 이미 우리 각자의 집과 사무실에 고양이들이 가득했다. 입양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모두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어느 시점이 되면 결국 우리가 책임져야 했다. 이미 품에 들어온 아이들을 살피기도 버거운데 이제는 길 잃은 강아지까지. 진이 어디까지 일을 벌이려는 건지. 나는 따라가기가 벅찬 마음을 짜증으로도, 애원으로도 내보였다.


이런 내 말에 진도 고개를 젓지는 않았지만, 그럼 어찌해야 했을까. 나도 거기에 할 말은 없었다. 당근 커뮤니티에 처음 올라온 게시물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오칠이가 혼자서 길거리를 누빈 지가 이미 몇 달은 된 상태였다. 여기저기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었지만 보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동네에 오칠이의 사정을 아는 분은 많았지만 당장 임보 할 수 있는 집은 없었다. 이렇게 내몰린 처지에 오칠이가 진의 집 앞에 머문 건 어쩌면 선택이었고, 또 어쩌면 부탁이었을지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물어볼 것 없이 아침산책을 준비하는 일처럼, 말하자면 당연하고, 생각하자면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종류의 일.



이름이 촌스러우면 오래 산다고 했던가. 진은 선물처럼 찾아온 이 아이를 자기 생일을 따서 ‘오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미 동네의 유명인사로 여러 이름을 갖고 있던 녀석에게 새 이름이 추가되었다. 앞으로 다사다난할 실내생활 적응을 위해 집에서 목욕도 하고, 고양이 친구들과도 천천히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며칠 뒤 기본적인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우리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오칠이에게 칩이 내장돼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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