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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광 May 27. 2024

똑똑한 고양이의 조건

복돌이의 재전송 버튼

인스타에서 똑똑한 고양이의 특징을 설명하는 영상을 보았다. 똑똑한 고양이는 대체로 이렇게 한다. 새로운 물건이나 가구 재배치 등 환경 변화에 반응한다. 숨겨놓은 장난감을 찾아내거나 던져진 장난감을 다시 가지고 온다. 사냥놀이를 좋아하고 몰두한다. 사료봉지만 만져도 반응한다. 공이나 작은 동물이 움직이는 영상을 집중해서 시청한다. 그리고, 스스로 문을 연다.


즉시 떠오른 고양이.


복돌 (남아, 두 살)


복돌이는 문 열기 천재다. 우리 사무실의 탕비실과 격리실 문을 향해 하루에도 몇 번씩 날아오른다. 손잡이에 매달려 체중을 정확히 싣고 단번에 열어젖히는 숙달된 움직임. 마치 억압된 무언가를 위해 해방운동을 하는 것처럼 복돌이의 결연한 문 열기는 그칠 줄을 모른다. 격리실에서는 친구들을 해방시키고, 탕비실에서는 간식들을 해방하려는 걸까. 와중에 복돌이의 똑똑함이 더 빛나는 부분은 현관 중문을 향해서는 문 열기를 거의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


막상 문을 열고서도 복돌이가 크게 헤집어 놓는 건 없다. 일단 해방의 문이 열리고 나면 포리, 하리, 건담이 같은 행동대장들이 곧장 따라 들어가 간식과 장난감을 장악한다. 복돌이는 그저 유유히 공간을 누비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할 뿐이다.


다른 조건에도 걸맞게 복돌이는 집사의 작은 행동이나 장난감의 움직임에도 기민하게 반응하고, 영상에 대한 집중력도 뛰어나다. 내가 농구 경기나 새들이 나오는 영상을 틀어두면 금세 그것들을 잡아챌 것처럼 몰입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복돌이의 예민함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스프레이’다.



스프레이는 고양이가 벽이나 가구 등에 소변을 뿌리는 일종의 마킹 행위이다. 그 자체로는 영역 동물인 고양이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지만, 실내 생활에서는 분명히 문제가 된다. 주로 중성화가 안 되어 있거나 실내생활에 적응이 덜 된 남자아이에게서 발생하지만, 둘 모두 복돌이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이 온전히 파악하고 있는 공간임에도 복돌이는 벽지, 유리창, 수납장, 라디에이터, 심지어 공기청정기까지 가리지 않고 자기 존재를 뽐낸다.  


우리 사무실에 온 뒤로 꾸준하게 고쳐지지 않는 문제라, 고양이 행동교정 선생님과 상담도 오랫동안 진행했다. 추측하는 원인으로는 사무실 고양이들의 나듦, 완전히 규칙적이지는 않은 집사들의 출퇴근 정도인데 당장은 고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교정을 위한 노력은 다양하게 해 보았다. 스프레이 했던 곳에 밥그릇 두기, 화장실 청결 및 배치 관리, 플루옥세틴(세로토닌 계열의 우울증 치료제) 복용, 펠리웨이(진정제) 사용은 물론 칭찬 세례까지. 아쉽게도 모두 효과가 없는 형편이다.


집사들의 불편 외에는 큰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난감하기는 하다. 세정제와 헝겊을 들고 사무실 구석구석을 다니며 복돌이와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그러다 보니 집사들 코에는 정밀한 감지기가 장착되어 쓱 스치는 냄새만으로 스프레이 흔적을 찾아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가끔 오작동해서 어떤 음식에서 조금만 시큼한 냄새를 맡아도 복돌이의 뒷모습이 생각나 버린다는 것.



사실 복돌이의 가장 큰 문제는 눈망울이다. 저 깊고 그윽한 눈으로 집사를 바라볼 때, 밀물처럼 밀려오는 사랑에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집사 품을 가득 채우는 풍성한 몸은 또 어떻고. 자기가 가진 모든 중력을 내던져 집사에게 안겨오는 복돌이의 점프에는 체중보다 몇십 배나 더 나가는 애정이 실려 있다. 복돌이의 스프레이는 어쩌면 보내고 보내도 충분한 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재전송 버튼일지 모르겠다.




고양이 지능 평가라는 것이 참 우습게도 사람의 기준 안에 있는 것이다. 사람의 뜻을 얼마나 이해하고 따르느냐로 따지는 것이니 고집이 세거나 집사에게 관심이 적으면 낮게 평가되고 만다. 반대로 사람과 적극적으로 교감하려고 하는 고양이는 지능이 높은 고양이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사랑이 많은 고양이가 곧 똑똑한 고양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나는 복돌이의 지능보다는 마음을 알고 싶다. 밤마다 자리를 비우는 집사들을 기다릴 때, 아침마다 제일 앞서 나와 출근하는 집사를 맞을 때, 아무리 멀리 있어도 부르기만 하면 달려와 안길 때, 그 시시 때때의 마음이 궁금하다. 영리함 너머에 펼쳐진 복돌이의 너른 마음을 헤아리고 싶다. 고양이 마음에 해방의 문을 열어젖히는 똑똑한 집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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