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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

제주로 보낸 말과 서울로 보낸 사람은, 과연 무사히 정착했을까?

by 정재광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서울이 어딘지 알고부터 쭉 서울살이를 꿈꿨다. 진학을 위해 간신히 서울 근방으로 거주지를 옮겼더니, 인천 사람들은 나더러 서울 사람 같다고 했다. 그때 생각했다. 뭘까, 서울 사람. 서울 사람이 어떻다 하고 일반화하는 게 잘못이라면, 내가 어디 사람인지 말하는 건 가능할까. 나는 누구일까. 어디 사람일까.


인천 토박이에게 왜 인천 하늘은 어두워지지 않냐고 했더니, "어둡잖아" 그러길래, "아니 까맣지가 않잖아" 그랬더니, "하늘이 어떻게 까매져" 그랬다. 내가 어릴 때 살던 구미시 선산읍은 쉽게 깜깜 해지는 곳이었다. 해가 지기 전부터 어두워지는 동네에서 같이 깜깜이가 되지 않으려고 나는 발버둥 쳤다. 여기는 이렇게 구리지만 난 곧 여길 벗어날 거야. 서울로 갈 거야. 반짝이는 곳에서 더 빛날 거야. 내 안의 서울을 만들어 살아남았다.


20대는 인천에서 보냈는데, 대학에 입학하기 일주일 전까지 내가 다닐 학교가 서울에 있는 줄 알았다. 하숙집에서 대학로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고속터미널에서 선산까지 갈 시간이었다. 문화생활보다는 가까운 사람들과 즐거운 술을 보내는 게, 아니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이롭다는 합리적 결론에 도달했다. 가끔 서울도 가긴 갔다. 대규모 집회에서 인서울 대학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웠다. 걔들은 단상 위 발언도 예쁘게 잘 했다. 돌아오는 1호선은 급행을 타도 너무 느렸다. 그 안의 공기는 약을 탄 것처럼 사람을 졸리게 했다. 2년 만에 착실한 꼰대가 된 나는 후배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서울을 자주 다녀야 해.


그 시절 명절에 친척 어른을 만나면 서울에서 공부하느라 애먹는다며 주머니를 채워주셨다. 나는 공부도 안 했지만 무엇보다 서울에 살지 않았다. 물론 주머니는 진실에 앞서므로 토는 달지 않았다. 하지만 궁금증은 남았다. 서울은 한국에서 공부하기 제일 좋은 곳인데 어른들은 왜 내게 돈을 주어가며 격려했을까. 나는 구미에 살며 공부할 때 훨씬 더 돈이 없었는데.


가까스로 근 2년은 서울에 들어와 살고 있다. 정확히는 구로에 살고 있다. 더 정확히는 가리봉동에 살고 있다. 니 내 누군지 아늬? 그 가리봉동에 살고 있다. 나 다시 돌아 갈래애! 그 가리봉동에 살고 있다. 같은 건물 한 층 아래에 한중사랑교회가 있다. 일요일이면 한국과 중국과 연변, 3개 국어가 만난다. 내가 태어나던 즈음 가리봉 오거리에는 노동삼권과 최저 임금을 보장하라는 외침이 울렸다는데, 지금 디지털단지 오거리에는 내가 지나갈 길을 만들라는 경적이 퍼진다.


나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가리봉동 밖에서 만난 서울 사람들은 별다를 게 없었다. 서울 사람이 특별히 다르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적당한 상식, 적당한 매너, 적당한 연민과 이기심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도 보통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결혼식 때문에 아주 오랜만에 구미에 내려갔더니 친구들은 사라지고 아저씨들이 애를 키우고 있었다. 일찍 나이 든 친구가 내게 너는 오유냐 일베냐 하고 물었다. 다른 아저씨가 서울 애들은 오유겠지 했다. 서울 사람이 보통 사람인 게 아니라 내가 보통 서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며칠 전 지방선거가 있었다. 서울시장과 광주시장과 구미시장이 같은 당 소속인 걸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청년 시절에는 박정희가 내내 대통령이었다는데,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는 김관용이라는 사람이 내내 구미시장이었다. 물론 그 김관용은 서로 다른 사람일 수 있다. 각각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소속이었으니까. 박근혜 게이트 이후 뉴스라곤 죄 끊으셨던 아버지는 이번에 어느 정당에 투표하셨을까.


군대 가기 무서워 몸서리치던 시절, 군필 선배들은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다고 외운 듯이 말했었다. 복무하는 동안 그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사는 곳은 사람을 얼마나 규정할까. 내가 어디 사람인지 말하는 게 가능할까. 나는 서울 사람일까, 인천 사람일까, 구미 사람일까.


이번 주말 나는 분당으로 이사 간다.

(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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