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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

여행일기 2025.10.22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날아왔다. 세상의 끝이라 여겨졌던 곳, 여기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고 시인이 노래했던 곳, 바다 너머 더 크고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는 물꼬를 텄다는 자랑스런 역사를 간직한 나라의 수도에서 하룻밤 묵으며 수박 겉핥기식 패키지 여행에 또다시 영혼을 불어넣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잠이야 기내에서 실컷 자두었고 더없이 맑은 정신에 소음 하나 없는 나만의 공간을 마주하니 에너지가 만땅으로 충전되기 시작한다.

View from the balcony of Carcavelos Beach Hotel, Lisbon, Portugal@EuroKor

창문을 여니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짠내가 진동한다. 자칭 날씨요정인 나의 여행은 거의 항상 일기예보와 상관없이 비 사이로 막 가는데 오늘도 내일도 그러하리라. 촉촉하게 젖은 리스본 공항에 내려 반짝이는 길을 달려 호텔에 왔지만 비와 상관없이 나의 섬김을 받는 고객들에게 좋은 여행으로 보답하고픈 착한 마음에 하늘도 응답하리라 믿는다. 관성이 아니라 누적된 경험의 통계가상 목적과 동기가 순수할 때 마음에 그린 그림대로 펼쳐지지 않은 적은 거의 없다.

길벗들에게 나눠줄 지도를 칼라로 인쇄했다. 원래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번 여행중에 방문하는 곳은 작은 마을이라도 집어 넣어 만들었다. 생각할 수록 나는 참 복많은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직업으로 삼아 여전히 즐기는 마음으로 일하며 살고 있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진상부터 천태만상 모든 종류의 인간들을 여행을 통해 만나면서 인간 이해의 극한값까지 나의 지경은 무한대로 넓어지고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에 나올만한 새로운 종류의 인간도 여전히 출몰한다. 여행은 끝없는 사람공부다.

돼지게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며 내가 무슬림이나 유대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단지 내가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못먹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아예 처음부터 그 맛을 모르기 때문에 굳이 아쉬워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역시 불행한 일이리라. 8세기 초에 북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슬람인들(무어족)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금까지 지배하고 있었다면 못먹었을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포르투갈 여행을 행복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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