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한글

한글의 수용성과 확장성을 생각하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1919년 3.1운동 때 발표된 독립선언서를 볼 때마다 조사와 동사의 일부만 한글이고 90% 이상의 내용이 한문으로 되어 있는 것이 늘 거슬렸다. 그렇다고 한문을 한글로 옮긴다고 해서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포하노라. =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세종대왕께서 1443년에 한글을 만드셨지만 그 이후로도 500년이 넘도록 한글은 무시당해왔고 그 가치를 모르는 백성들이 제대로 활용도 못해왔었다.

호머 헐버트 박사님의 사민필지 서문에는 음운학적으로 완벽한 문자인 한글에 대한 사랑과 한글을 경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들어있다.


세종대왕의 백성들도 못알아본 한글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외국인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박사님이 1891년에 우리나라에서 펴낸 최초의 순한글 교과서 사민필지의 서문을 읽어보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중국 글자로는 모든 사람이 빨리 알며 널리 볼 수가 없고, 조선언문은 본국 글일 뿐더러 선비와 백성과 남녀가 널리 보고 알기 쉬운데, 슬프다 조선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만은 사람들이 긴한줄로 알지 아니하고 도리어 업신여기니 어찌 아깝지 아니하리요? 이러므로 외국인으로 우매한 사람이 조선말과 문법에 익숙치 못한 것으로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특별히 언문으로써 천하 각국 지도와 귀로 듣고 눈으로 본 풍속을 대강 기록할새..."


"그 남자는 나이스하긴 한데, 생각이 좀 올드한 것 같아요. 그 여자는 텐션이 너무 높아서 팔로우하기 힘들어요. 그리고 플러팅이 심한 편이니 팩트체크가 필요하죠. 아 킹받아!" 주로 예능방송을 중심으로 퍼지는 유행어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무분별하게 섞어 쓰는 요즘 사람들의 대화를 한글로 옮겨보면 이 정도는 약한 수준이다. 이런 말 쓴다고 잔소리하면 트렌드도 못따라가는 꼰대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나는 한글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으로서 영문이나 한문으로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때도 의도적으로 한글로 더 쓰려고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말을 순한글로만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한글 탈레반도 아니다. 다만 그러나 최근 들어 지나치게 많은 외국어들이 거의 우리말을 대체할 정도로 한글로 표기되는 현상을 보며 누군가 한번쯤 공론화를 통해 기준을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은 차세대 IT인재들을 길러내는 글로벌스타트업스쿨의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실상 거의 모든 용어가 한글로 표기된 영어이거나 영문 약자인 것이 당연한 현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한글로 표기된 외국어는 예능이나 예술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게임, 디자인, 마케팅, IT, 경제, 경영 등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이에 저항하는 것은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고 도태되는 운명이 될 뿐이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동상 옆에 기후테크 컨퍼런스를 알리는 한글/영문 전광판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가볍게 글쓰기 연습을 하기로 해놓고 자꾸만 무거운 주제로 깊이 들어가려고 하는 나의 관성을 워워 제어하고 이만 줄여야겠다. 우리말뿐만 아니라 영어, 독어, 불어, 중어, 일어 등 그 어떤 언어든 소리 나는대로 받아 쓸 수 있는 한글은 디지털 시대에 최적화된 문자이다. 15세기에 이 땅의 한 스마트한 왕이 발명한 문자가 21세기를 살고있는 후손들에게 이렇게 엄청난 축복이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글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사랑과 자랑스러움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더 다듬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글로 내놔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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