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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립 Nov 13. 2024

행위의 습기

아슬아슬한 관계의 연속이었다. 그 사람은 퇴근만 하면 연락이 끊겼고,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야만 하는 위치였으니까. 우리는 사랑 없이 사랑하면서 서로를 지칭하지조차 못했다. 그 사람의 차에서 몸을 섞는 일이 잦았다. 그 사람과 혀를 섞다가 그 사람의 가장 낮은 아래서 올려다보면 그 사람은 내 눈이 예쁘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깊게 빨아들이느라 벌어진 내 입술 틈 사이를 지독하게 노렸다. 반나체로 사랑이 끝나면 차창은 온통 습기로 가득 차 바깥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습기가 나나 그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라는 지칭대명사도 쓸 수 없는 나와 그 사람. 


뜨거운 여름에 만난 그 사람과 나는 어느덧 가을을 맞이했다. 서로가 넘지 말아야 할 선 끝에 서선 진심 없는 사랑을 합리화했다. 그러다가도 그 사람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을 말하는 것 같아 괜스레 가슴을 부여잡았다. 나,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됐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 사람은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매우 흥미로워하며 뜬금없는 부탁을 했다. 문장 하나를 던져주며 그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 하나를 써달라고 했다. 그날은 초록의 햇빛과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나는 그것이 비문이라며 새로 고친 문장으로 글을 썼다. 그 사람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다는 설렘 하나로 뚝딱 써낸 글이었다. 다 쓰고 보니 주인공은 그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이거 나 보면서 쓴 글이죠, 하고 물었다. 나는 그게 또 괘씸해져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사람을 활자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은 글이었기에. 나는 직감했다. 사랑해서 선을 지키느라 애쓸 나를.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사랑하는 작은 여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끔은 그 여자애의 영상을 보여주며 예뻐죽겠다는 표현을 썼고, 가끔은 큰 여자와 작은 여자와 함께 셋이서 유원지로 놀러 가서 생긴 일을 말하며 웃었다. 아무렇지 않아야 해서 아무렇지 않았다. 


가을의 한가운데서 그 사람과 나는 서로에게 좋아한단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좋아한다는 그 미지근한 온도가 이리도 미칠 듯이 가슴 뛰는 것인지 몰랐다. 나와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는 둥 편히 누워 꼭 껴안고 있고 싶다는 둥 그런, 시럽에 절여진 것 같은 말들을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 사람과 그러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그저 희념으로 끝날 우리의 관계가 서글퍼지기도 했다. 


그 사이에 나는 공황발작으로 여러 번 응급실로 실려갔고, 이런 말 같지도 않은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윤을 생각했다. 윤이 내린 저주 같은 사람. 윤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된 ECT 치료로 윤의 얼굴조차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내가 너무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사랑했던 이의 얼굴조차 모르는 벌레 같은 나. 목 놓아 우는 날을 줄였다. 바다를 찾는 마음도 애써 구겨 넣었다. 이 모든 게 윤을 배반하고 잘 살고 싶은 죄악인 듯했다. 나는, 불행해야만 했다. 


왜 불행의 예감은 항상 적중하는지. 빌어먹을 인생. 

그 사람의 아이를 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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