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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립 Nov 06. 2024

스스로 선고한 시한부 인생

방 창문을 열면 늘 빨간 십자가가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적십자 표지가. 갈수록 심해지는 공황발작으로 고통받을 때면 늘 그곳으로 실려갔다. 이름을 몇 차례 확인하는 의료진들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내 이름 석 자를 소리 질렀다. 살려달라는 말을 내 이름으로 했다. 방에서 그 붉은 표식을 볼 때면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으로 가득 찼다.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일이었다. 죽고 싶어 안달인 내가 숨을 못 쉰다는 공포로 살고 싶어 발작을 일으킨다는 게 모순이었다.


그 사람은 뜬금없는 시간에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뜬금없는 순간에 연락이 끊겼다. 개의치 않았다. 몇 개월 남지 않는 시간 동안 그저 흥미로운 사건일 뿐이었다. 서로를 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남자는 이따금 집 앞으로 찾아와 내가 좋아할 법한 선물을 전했다. 이따금 내가 좋아 죽는 술을 함께 먹었다. 이따금 나를 바다로 데려갔다. 바다엔 온통 윤의 시체가 떠다녔다. 윤이 죽고 난 이후로, 폐쇄병동에서 퇴원한 이후로, 숨이 막힐 때마다 바다를 찾았으나 그때마다 윤의 시체만 보았다. 바다는 더 이상 내게 즐거운 시간이란 고유명사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나서부터 공황이 찾아왔다.


그 사람과 함께 열심히 일을 하며 열심히 몸을 섞었다. 그 사람이 원했던 것은 나와의 잠자리였고, 내가 원했던 것은 그 사람의 자극이었으므로 서로 원하는 것만을 열심히 취하려 들었다. 그 무렵 내 글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여러 지방을 오가며 글을 쓰고 전시를 했다. 내가 무엇을 쓰는지 알지도 못한 채 사람들이 원하는 글을 아무렇게나 쏟아냈다. 병원에서나 쓰이던 내 이름이 부끄러워 필명을 만들어 뒤로 숨었다. 나는 도망과 회피에 능한 사람이었으니까.


애인은 점점 바빠지는 나를 불안해했다. 나의 건강과 우리의 사랑을 모두 못 견뎌했던 것 같다. 윤을 죽였다는 죄책감이나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우울감에만 젖어 살다가 갖가지 일을 끌어 하다 보니 애인은 물론 나의 파랑에도 소홀해졌다. 애인은 내게 늘 안정적인 기둥이 되어주고 싶어 했고, 자꾸만 집 문을 열고 나서는 나를 보곤 결혼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이별을 택했다. 올해까지만 살 작정인 사람이 누군가와 법적으로 엮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완전체라 생각했던 사랑을 스스로 버렸다는 생각에 괴로워 몇 날 며칠을 울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됐다.


만취한 채로 노래방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사랑을 배신한 노래 따위를 부르며 오열하고 그날에 할당된 죄책감을 털었다. 오열하다가 폭소를 터뜨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옳은 것은 모두 버리고 틀린 것만 모두 끌어안는 듯했다. 그 사람과 벌건 대낮에 몸을 섞고 퇴근을 하는 날엔 암막 커튼을 치고 입을 틀어막고서 울었다. 뜬금없는 메시지도, 맥락 없는 잠자리도 이해할 수 없었으나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스스로 삶의 끝을 정해두고선 시한부마냥 슬퍼했다. 슬프기 위해 슬퍼했다.


스무 살 이후부터 쭉, 사람들이 이런 걸 왜 할까 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살면서 가장 많이 하면서도 나는 사람들이 이런 걸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과의 다음을 기다렸다. 잔뜩 젖어 말캉거리는 나를 처음 보았다. 그 사람의 시선 안에만 들면 자꾸 처음 보는 내가 튀어나왔다. 그럴 때면 또 술을 마시고 울었다. 그리고 또 그 사람을 기다렸다.


"우리 지금처럼만 지내요."


그 사람은 말했다.


"딱 이 정도 거리에서 오래 봐요."


그 사람은 덧붙였다.

오래 보자는 말에 절망했다. 아닌가. 이 정도 거리, 라고 선을 그어서였나.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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