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연수를 위한 기차 안에서 우리는 아기공룡 둘리를 보았다. 그 사람은 이미 수십 번은 본 듯이 등장인물의 대사와 행동을 꿰고 있었고, 바른 척하는 양아치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에게서 어린아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귀여웠다. 누군가를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있던가. 나도 모르게 슬쩍슬쩍 몰래 웃었다.
교육이 끝나고 나선 우린 약속이나 한 듯이 모텔을 찾았다. 방 안으로 나를 끄는 손이 꽤나 매끄럽고 순조로웠다. 사실 기차표를 예매해 준다며 나눈 사적인 메시지에서 꽤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사랑하는 이가 둘이나 있는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이었다. 서로 회사 밖에선 어떤 사람인지 사진을 교환하고 소개하며 떠들었다. 오랜만에 재미있었다.
사진에서나 보던 그 사람의 문신이 눈에 익기도 전에 나를 안았다. 주저 없이 내게 하는 말들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리허설을 거쳐 많은 공연을 한 연극배우 같았다. 이런 건 오랜만이라는 그 사람의 말도 하나의 대사 같았다. 어쩔 줄 모르겠는 나를 억지로 삼켰다. 나 또한 관객이 아닌 출연진이었으므로. 그 사람은 진득한 밤 같았으나 밤을 함께 보낼 수는 없는 인물이었다. 시간을 그저 버리던 나에겐 의미 없는 사실이었다.
"우리 오늘 처음 봤는데 되게 오래 알고 지낸 사이 같아요."
그 사람의 말에 그저 웃었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 사이를 아무리 넘나들어 봐도 낯설지 않은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낯설었다. 익숙한 것을 그저 버리던 나에겐 의미 없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올해까지만 살 건데, 뭐. 내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죽을지 방법을 고찰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잘못된 것들이 비틀대며 지르는 비명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을까요?"
"뜻대로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