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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부 시민기자단 Jul 01. 2016

어머니의 열무김치

옆에서 주무시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 가셨나? 불은 꺼져 있었다.

뒤뜰에 가셨나? 이른 새벽에 어딜 가셨지? 혼자 중얼거리며 뒤뜰로 나갔다.


순간 뒤뜰 가득 옥잠화가 새벽이슬을 머금고 청초하게 피어있는 모습에 난 그대로 멈춰버렸다. 하얗고 긴 목을 우아하게 내보이며 내 어린 날의 그리움과 설레 임을 온전히 향기로 뿜어내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 누구 하나 봐주는 이 없이 빗물 떨어지는 처마 밑에 잡초처럼 덩그러니 피어있었는데 어느새 그 화려한 꽃들 다보내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채 꽃봉오리는 설움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어머니는 큰 아들을 먼저 보내고 무너진 가슴을 어쩌지 못하고 그 멈춰버린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계셨다. 


울컥한 마음을 달래려 쪽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어느새 밭에 갔다 오셨는지 대문간에는 막 뽑아다 놓은 열무가 이슬에 젖어 더욱 파랗게 싱싱하다. 그 옆에는 한 마리의 겨울새처럼 동그마니 앉아있는 어머니의 손놀림이 무척 빨랐다.


추석 때는 꼭 내려오라는 어머니의 신신당부가 이것이었구나! 저 열무를 심어놓고 비가 오면 떠내려갈까 온밤을 지새우며 붙들고 계셨으리라. 저 가녀린 어깨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열무를 밭에서 끌고 오셨을까? 먹먹해지는 가슴을 누르며 “아니 엄마는 주무시다말고 어딜 갔다 오셨어요!" 뻔히 알면서도 퉁명스러워졌다.


벌레는 좀 먹었어도 농약은 안 친 거니 몸에는 좋을 거라며 들어가 잠이나 더 자라고 하신다. 들은 척 만 척 주저앉아 열무를 손에 들었다. 어머니는 일어나시더니 부추랑 파를 뜯어 오신다며 밭으로 향하셨다. 나도 같이 가려고 일어나며 바구니를 들었다. 어머니는 밀치듯 바구니를 뺏더니 이슬이 옷에 젖어서 구적 거린다며 막무가내로 혼자 가신다. 조그만 체구로 온 힘을 다해 걸어가는 어머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냉장고에 담아온 김치를 넣으며 한보시기 꺼냈다. 고추장에 참기름을 넣고 밥 한 덩어리를 비볐다. 자꾸만 목에서 막힌다. 물을 먹어본다. 그래도 안 넘어간다. 열무김치 속에 작고 가녀린 엄마가 동그마니 놓여있다.





손창명 기자

잘 웃고, 잘 먹는 사람.

속으로만삐지는 사람.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

인권과 관련된 기사를 누구보다 잘 써 내려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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