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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부 시민기자단 Jun 28. 2017

6. 25

  “북한군이 들이대는 총구멍을 얼떨결에 엄지손가락으로 막았다. 그랬더니 북한군이 빤히 쳐다보다 그냥 돌아서 가더라.”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셨던 웃지 못할 6. 25 참상이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코미디 같은 행동을 하는지도 모른다. 살기 위한 할아버지의 대처 방법은 다양했다. 솜이불을 뒤 집어 쓰고 두 손만 내놓고 싹싹 빌기도 하고, 급한 마음에 아궁이에 들어가 숨 막혀 죽을 뻔하기도 했다. 나는 절체절명의 순간순간을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처럼 듣곤 했다. 


  그래도 할아버지께서는 운이 좋아 살아나셨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르고 끌려가기도 하고, 아니면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다고 하셨다.      


  6. 25의 참담한 실상을 전해주던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증거라도 남기려는 듯한 빨간 산은 풀 한 포기 품지도 못하고 침묵했다. 빨간 산은 작은 동산인데 그 동네 살던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총살당한 곳이라 그분들의 피로 흙이 물들었다 해서 ‘빨간 산’이란 명칭이 붙여졌다. 어느 날엔가 증거 인멸이라도 하듯 동산을 뭉개고 떡하니 공장이 들어섰다. 더 이상 동네에서 6. 25는 말이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일들은 잊혀지게 마련이다.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한 죽음인지 모르고 많은 민간인들이 죽었기에 6. 25는 더 아프고 슬픈 날이다. 지금까지 국가는 조국을 위해 자랑스럽게 바친 유명인의 죽음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나라 구석구석을 피로 물들인 민간인들에 대한 슬픔 또한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6. 25가 무슨 날인지도 잘 모르는 세대가 늘어난다. 비록 사상 대립이 팽배했던 과거의 비극이지만 초록의 강산이 내 가족의 피로 물든 날이라는 것은 꼭 기억해야 한다. 이 땅의 국민이라면 체제와 무관하게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야 했던 6. 25의 모든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손창명 기자

잘 웃고, 잘 먹는 사람.

속으로만 삐지는 사람.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

인권과 관련된 기사를 누구보다 잘 써 내려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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