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레트 꽃

by 서부 글쓰기모임

이맘때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간 적이 있다. 불교집안이던 우리 집은 할머니를 이어 어머니께서 지극정성 절에 다니셨다. 나의 종교가 무엇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불교면 나는 그냥 불교다. 초등학교 소풍 때 외에는 절에 가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좀 낯설고 숨이 막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그만 산사가 주는 한적한 경치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올라가는 길목에 스님이 젊은 남자하고 길 양쪽으로 하얀 꽃을 심고 있었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맑고 깨끗한 꽃이 더욱 향기로왔다. 어머니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스님의 합장을 뒤로하고 대웅전으로 올라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절하고 내려왔다. 그 사이 스님 하고 젊은 남자는 하얀 꽃을 길 양쪽으로 예쁘게 세워놓듯 심고는 흙 묻은 손을 씻고 있었다. 물기를 툭툭 털어내며 스님은 “마가레트 꽃이 참 이쁘지요!” 하셨다. 스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마침 어머님이 오셨다. 다행이다 싶어 얼른 자리를 뜨는데 스님 뒤 따라오던 젊은 남자 하고 마주쳤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까딱하고 지나치는데 “여기 오셨으면 그냥은 못 갑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을 던졌다. 알고 보니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연등을 만드느라 조그만 산사지만 엄청 바쁘다고 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어머니의 말씀도 있고 한 이틀만 연등을 만들기로 했다.

시골 산속이라서 마땅한 차편도 없는 때라 먼 동네 보살님들은 주무시며 일을 했다. 어머니하고 하룻밤을 자면서 연등을 만드는데 주위에 다른 보살님들이 나하고 그 젊은 남자 하고 닮았다고 혹시 남매가 아니냐고 수다스럽게 웃으신다. 어머니도 정말 닮았다고 하셨다. 그 사람도 좋지는 않았겠지만 내 쪽이 기분은 더 나빴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 하고 내가 닮았다니 나는 여잔데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부터 그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다.

자기는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데 데모하다가 붙잡힐까 봐 도망 다니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시국이 어수선 한때라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당연히 스님 되려고 절에 온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배부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는 가고 싶어도 못가는 대학을 저렇게 팽개치고 무슨 데모?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색깔과 방향은 달라도 뭔지 모를 공감이 들었다. -나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공부를 안 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대학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대학은 왜 절대적인 가?-등 이제 스물을 갓 넘긴 젊은이들이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었다. 서로 다른 성향에 대해 비난과 핀잔을 섞다가 결국은 서로에게 위안과 가는 길을 응원해주는 친구가 되었다.

내 젊은 날의 둑엔 아직도 하얀 마가레트 꽃이 향기롭게 피어있다. 그런 젊은 시절이 있어서 지금도 나는 물음표를 던지며 늙어가는 둑을 다독거린다.




손창명 기자

잘 웃고, 잘 먹는 사람.

속으로만 삐지는 사람.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

인권과 관련된 기사를 누구보다 잘 써 내려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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