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우리의 창을 드렸다‘ 를 읽고
‘예신이?’
너무 놀랐다. ‘세월호 참사’에 예신이 포함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예신은 예비신학생을 말한다. 사제가 될 준비를 하는 중고생을 이른다. 순간 떠오른 시편 한 구절.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비를 주시고’ 도대체 그분의 뜻이 뭘까? 약간의 언질도 없는 답답함은 책을 읽는 내내 계속되었다. 끝내 두 손을 든 것은 나였다.
세월호 사건 이후 새로운 가족들이 많이 생겨났다. 유가족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유가족들이나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사고당한 아이들은 모두 끌어안아야 할 내 아이였다. 품을 아이들이 더 많아진 셈이다.
세상은 더 좋아지고 편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 좋은 세상은 비명에 사라진 내 아이가 누려야 할 것인데 다른 이들이 누리고 있다. 모두 만끽하고 있는데 내 사랑하는 아이만 빠져있다. 부모에겐 미칠 노릇이다. 그래서 내 새끼가 더 안쓰럽고 이런 상황을 조장한 인간들이 이가 갈리도록 싫고 밉다. 난 아직 배 아파서 낳은 애가 없어서 그런지 완전히 이해하기는 불편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이런 일을 당했으면 울다가 죽을 것만 같다. 일어서 준 그들이 고맙다.
서로 같은 처지여서 위로가 된다고 한다. 보상을 해 주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그 보상에 마음이 담겨 있지 않으면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결국 돌아오는 것은 아이 죽이고 받은 대가라는 곱지 않은 시선 아니겠는가. 그 돈으로 사 먹은 음식이 목에서 넘어가겠는가, 그 돈 보태서 산 집에서 잠이 오겠는가.
조카가 초등학생인데도 동생 무릎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는 엄마가 말씀하신다.
“내려와. 엄마 힘들어” 한 치 건너 두 치라고. 엄마는 손녀보다 내 딸 아플까 봐 그것이 더 걱정인가 보다. 유가족인 엄마는 내 죽은 딸만 보이고 외할머니는 슬퍼서 울다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인 딸만 보인다. 서로의 딸을 향한 사랑은 많이 닮았다.
우리는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어?’ 하고 말한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손가락이 하나밖에 없으면 더 아프다’고 말한다. 외롭고 한층 더 공을 많이 들였기에 그럴 터. 온 신경이, 사랑이, 역할이 집중되어 있었기에 빈자리의 바람이 더 크지 않았을까.
그래서 수원 가톨릭 대학교에는 임마누엘관이라는 공간이 생겼다. 사제의 꿈을 품었을 그 따뜻한 마음과 지금도 내일도 알 수 없을 그분의 뜻과 말없이 조용히 따라준 모든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해서.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마음들도 기억하고 싶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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