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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부 시민기자단 Oct 25. 2022

다가올 미래

 20년 전 그 총각은 22살 우리 아이는 8살 때 교회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성인자폐는 그때 처음 보았는데 그 총각 엄마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10년 후면 이런 우리 애가 이런 모습이겠네요. 세월은 정말 빨리 흘러서 강산이 두 번 지나 내 아이는 그 총각과 비슷한 체형과 키로 자랐다. 

 그때는 다가올 미래에 20년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이는 학교 교육과 사교육을 병행하며 정말 힘겨운 날들을 보냈는데 만만치 않은 사교육비와 아이가 손만 놓으면 도망을 가는 바람에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야 했다. 손을 놓으면 달리는 찻길로 뛰어들거나 앞만 보고 뛰어다녀 아침에 나와서 저녁에 집에 같이 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초등학교 때는 아이를 잡거나 내 손과 아이의 허리에 끈을 묶고 다닐 때가 많았다. 이때 나는 다리가 부러지고 무릎 슬개골이 깨져 2번에 거쳐 깁스를 넉 달은 해야 했다. 중등과정, 고등과정을 거치면서 사춘기를 보냈는데 사춘기도 비장애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와는 다른 행동을 하는데 화가 나면 자기 옷을 찢거나 다른 아이들 손가락을 벌려서 병원을 달려가게 했다. 사춘기는 장애, 비장애를 가리는 것 같지 않다. 악몽 같았던 사춘기도 보내고 전공과를 졸업을 하고 집에서 2년 7개월을 아이와 함께 있어야 했다. 학교를 졸업을 하고 나니 불러주는 이도, 찾아주는 이도 없었다.

 스포츠 센터에서 수영과 헬스를 하고 서대문 안산 둘레길을 돌곤 했는데 이 시기에 나는 학교 다닐 때 보다 더 힘든 나날들을 보낸 것 같다. 비장애인들이 부모가 가르치고 길러주면 사회에 나가서 자기 몫을 다하며 자립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비장애, 특히 발달장애인들은 어떤가. 자립은커녕 이 닦기도 안 되고 신변처리도 안 되는. 외모상으로는 문제없는 우리 아들 같은 중증장애를 누가 이해할까. 같이 밥을 먹으면 입을 닦아줘야 하고 코를 닦아줘야 하는 현실을.

 이제는 아이 수발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깨, 팔, 다리가 다 아프다. 길을 걸으면 노인주간보호센터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 주간보호는 현실과는 다르다. 이삼 년은 보통이고 삼사 년을 기다려도 들어가기 힘들다. 다행히 은평교회에서 장애인 주간보호를 만들어 조금은 숨통을 트이기는 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한 편이다.

 이제 노년기에 접어든 나이가 되고 보니 생각이 많다. 내가 아프면 아이를 맡기고 병원이라도 편히 다닐 수 있는 주·단기보호시설, 내 사후에 내가 살던 동네에서 아이가 편히 눈치 안 보고 살기 바란다. 이제는 아이 수발에서 벗어나 나를 위해 살고 싶다. 그리고 장애를 편히 받아들이는 그런 시설을 보고 싶다. 




송명자 기자

써 려갈 이야기가 많은 사람

담담하고 담대하게 풀어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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