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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Feb 04. 2019

서른여덟, 6개월 만에 결혼하다 #14

양가의 합숙 훈련

여러모로 의미 있는 추석이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먼저 예식장을 계약했다. 2018년 11월 18일 일요일. 원하던 날짜보다 일주일이 늦어졌다. 하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늘어난 일주일에 크게 감사했다. 전화위복인 셈이다.


예식장과 날짜가 정해지고 청첩장을 주문한다. 결혼식은 양가 부모님과 신랑 신부만으로 완성되는 행사가 아니다. 관객이 있어야 완성되는 연극처럼 하객이 필요하다. 정성껏 초대하고 싶다. 유럽에서 찍은 우리 둘의 사진을 넣고, 초대의 글을 쓴다.


봄에 만나 가을에 결혼합니다.

앞으로 남은 모든 계절을 함께하려고 합니다.

다가올 겨울에도 꽃길을 걸을 수 있도록

귀한 시간 내셔서 참석해주세요.

다정하고 예쁜 부부가 되겠습니다.

축복과 격려 속에서 더없이 잘 살겠습니다.


써놓고 보니 뭉클하다. 잘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추석 전에 시작한 창틀 공사가 끝나고, 도배와 장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엄마는 공사 현장에 주인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나와 엄마는 매일 신혼집에 들렀다. 리모델링 공사를 서둘렀다. 공사가 끝나야 그가 이사를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방을 빼고 전세금을 돌려받아야 잔금을 치를 수 있다.


“어머니가 올라오신대.”


추석이 지나고 10월이다. 안방 붙박이장과 부엌 싱크대 공사가 끝나고, 이번 주말에 그의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목요일에 시어머니가 올라와서 가락동 집 정리를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이사도 이사지만, 신혼집을 보고 싶으신 것 같았다.


목요일은 중요한 날이다. 오전에 집주인과 약속이 되어 있다. 원래대로라면 11월 말에 잔금을 치르기로 했다. 그런데 시누이가 전세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선뜻 빌려주었다. 덕분에 이사 오기 전에 집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법무사의 입회 아래 소유권 및 등기 이전을 한다. 부동산 중개료와 취득세로 제법 많은 돈이 나간다.


"부자 되세요."

전 주인이 악수를 청한다. 네, 꼭 부자가 될게요. 주민센터에 방문해서 전입 신고만 하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


“세입자시죠?”

주민센터 직원이 물어본다.


“아니요. 집주인인데요.”

당당하게 부동산 서류를 내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집이 생겼다. 집뿐만 아니라 평생 친구도 생겼다. 그와 함께 노후를 준비하며 이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상상을 해본다.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


집과 관련된 모든 절차를 마치고, 사당역에서 시어머니를 만났다. 단 둘이 만나는 건 처음이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신혼집으로 향한다. 찾아오기 쉬우시라고 큰길로 안내해드린다. 시어머니가 마트와 과일 가게, 채소 가게 등이 즐비한 것을 보고 마음에 들어하신다. 그의 회사까지 네 정거장밖에 안 된다는 점도 강조한다.


어머니가 집에 들어서면서 시아버지와 통화를 시작한다. 어머니를 서울로 올려보낸 게 시아버지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방이 세 개고, 안방이 아주 넓어요. 붙박이장에 웬만한 건 다 들어가겠네요. 베란다가 두 개 있는데, 뒷 베란다가 아주 커요. 남향이라 햇볕도 잘 들어오고요.”

"보일러요?”

시아버지가 보일러의 시공 날짜를 물어보신 모양이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다. 보일러에는 “2017년"이라고 쓰여 있다. 시아버지가 흡족해하신다. 시아버지는 굉장히 사소한 것도 궁금해하신다. 지하방까지 브리핑한 다음에야 통화가 끝났다. 어머니를 그의 자취방에 모셔다드리고 오후에 출근했다.


토요일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금요일 저녁부터 이사를 서둘렀다. 시어머니와 엄마는 신혼집에서 청소하고, 나는 그와 가락동으로 갔다. 2인 1조의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그의 자취방은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로 처음이다. 방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었다. 웬만한 건 다 버리고 가기로 했다. 차가 막혀서 가락동까지 두 번 왔다 갔다 했더니 밤이 늦었다.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우리 네 명은 이 밤을 어디서 보내야 하는 걸까?


"진영이랑 기훈이가 서초동에서 자고, 사돈이랑 제가 이 집에서 자기로 해요."

엄마가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두 어머니가 신혼집에서 합숙했다. 엄마는 안방에서, 시어머니는 작은 방에서. 보일러는 켜지 않고, 불은 환하게 밝힌 채로. 보일러는 작동하지 않았고, 이사 첫날에는 불을 다 켜놓고 자야 부자가 된다고 믿으셨다.


토요일은 아침부터 비가 많이 왔다. 가락동 집을 두 번 왕복하고 나서야 이삿짐을 모두 옮길 수 있었다. 이제야 궁둥이 좀 붙일 수 있겠구나, 하는 타이밍에 엄마가 말한다.


"시집갈 때 주려고 그릇이랑 냄비, 밥솥을 사놨다. 서초동 가서 그것 좀 가져오자."


남현동 집에 지하방이 있다면 서초동 집에는 다락방이 있다. 다락방은 창고로 쓰였고, 내 관심 밖이었다. 신혼집에 시어머니를 남겨 두고, 셋이 서초동으로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와 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가락동 집을 정리하는 것에 비하면 주방 집기를 가져오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엄마가 다락방 열쇠를 들고 계단을 올라간다. 좁은 계단이라 우리는 아래에서 기다린다. 엄마가 포장도 뜯지 않은 상자를 하나씩 내려준다. 반질거리는 검은 상자, 세련된 흰 상자, 투박한 종이 상자. 상자의 행렬은 끝이 없다. 그가 상자를 차에 옮기고 올 때마다 새로운 상자들이 쌓여간다. 네 번을 왔다 갔다 한 후에도 엄마의 작업은 한창이었다. 나는 조금 무서워졌다.


"엄마, 이게 다 뭐야? 언제 산 거야?"

"응. 너 스물아홉 때부터 언제 시집갈지 몰라서 엄마가 하나씩 사놨어. 유행 안 타는 좋은 걸로 샀다. 할부 안 끝난 것도 있어."


자그마치 9년이다. 엄마는 9년 전부터 나의 혼수를 준비해온 것이다. 사놓은 그릇을 써야 하니까 시집가라고 했던 엄마의 잔소리는 농담이 아니었다. 엄마는 진지했다. 그 상자들은 엄마의 꿈이고 희망이었다. 두 번을 더 왔다갔다한 후에야 짐을 다 실을 수 있었다.


"어머머... 다락방에 햇살 들어온다."

엄마가 이마의 구슬땀을 닦으며 환하게 웃는다. 어두웠던 복도에 햇살이 내리쬔다.


*****

신혼집에서는 시어머니가 혼자서 짐 정리를 하며 기다리고 계셨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대요."

전화를 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였다고 하신다. 끝없이 이어지는 상자의 행렬에 시어머니가 할 말을 잊으신다. 그때부터 우리 넷은 상자를 뜯었다. 냄비만 열 개가 넘는다. 열흘 치 곰국을 끓여도 될만한 커다란 냄비, 라면용 냄비, 김치찌개용 냄비, 전골냄비 등. 프라이팬 삼형제와 달걀찜용 뚝배기, 칼 세트. 압력밥솥과 원목 도마, 커피 포트, 쟁반 세트, 그리고 화수분처럼 나오는 그릇들. 평생을 그릇 걱정 없이 살아도 될 것 같다. 엄마도 스스로 놀라는 눈치다. 시어머니는 가락동에서 가져온 그릇을 말없이 재활용 봉투에 담으셨다.


"계세요? 현관 예쁘게 칠하셨네."

101호 아줌마다. 우리가 현관을 새로 칠해서 옆집 현관이 낡아 보인다고 했다. 페인트칠 가격을 궁금해하신다. 마침 지나가던 반장 아줌마도 함께 기웃거린다. 본능적으로 나는 엄마 뒤에 숨었다. 이런 건 엄마가 전문이다.


"미리 공지를 하고 공사해야 했는데, 급하게 진행돼서 인사가 늦었네요. 세제라도 하나씩 돌리고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데 시끄러우셨죠? 죄송해요. 현관은 저희가 다섯 집 다 칠해드릴게요."

옆집 아줌마와 반장 아줌마가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이사라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배려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삿짐을 정리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어머니 두 분이 없었다면 엄두가 안 나는 작업이다.


"사돈, 하루 더 자고 가세요."

"어머니, 하루 더 주무시고 가세요. 내일 웨딩드레스 보러 갈 건데, 어머니도 같이 가요."


시어머니가 못 이기는 척 하루 더 주무신다. 다음 날 넷이 아침식사를 같이 하고 청담동에 갔다.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건 이사에 비하면 매우 쉽다. 그래 봐야 하루 입을 옷이다. 양가 어머니의 참관 아래 세 벌의 드레스를 입고, 만장일치로 세 번째 것으로 결정했다. 보통은 남편이나 친구와 오는데, 양가 어머니와 같이 온 신부는 내가 처음이라고 한다. 우리의 결혼 준비에는 웨딩플래너도, 드레스 샵 투어도 없다. 원샷원킬이 답이다. 목요일에 올라오신 어머니는 일요일이 되어서야 내려가셨다. 사돈하고 살림 차렸냐는 시아버지의 핀잔과 함께.


40일 뒤면 결혼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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