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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Feb 06. 2019

서른여덟, 6개월 만에 결혼하다 #15

시월드의 체험판, 상견례

“어머니가 다리를 다치셨대.”

“뭐? 어쩌시다가? 얼마나 다치셨대?”


가슴이 철렁하다. 어머니가 대전에 내려가시고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계단에서 헛디뎌서 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악재다. 사람을 잘못 들여서 그렇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나저나 어쩌냐. 결혼 준비하려면 서울을 몇 번은 올라가야 하는데 내가 꼼짝을 못 하게 생겼네.”

“결혼 준비는 친정엄마랑 제가 하면 돼요. 어머니는 결혼식 때까지 빨리 나으셔야죠.”


이번 주가 상견례다. 불편한 다리로 올라오실 걸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원래대로라면 상견례를 하고, 결혼 날짜를 잡고, 집을 알아봤어야 한다. 우리는 역순이다. 집을 계약하고, 결혼 날짜를 정하고, 상견례를 했다. 결혼의 거대한 흐름은 만들어졌고, 상견례는 형식적인 절차였다. 금요일 오후에 시부모님이 서울에 올라오셨다. 강남역의 한정식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양가의 가족이 공식적으로 인사하는 시간이다. 불편하고 어렵지만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의 가족이 8명, 내 가족이 6명이다. 그에게는 부모님 외에 누나네 가족이 있고, 순희 고모도 초대했다. 나한테는 부모님과 오빠네 가족이 있다. 민서와 민준이, 다우의 나이가 비슷하다. 다우가 민서는 동갑이라서, 민준이는 형이라서 좋아한다. 셋은 유튜브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금방 친해졌다. 아이들의 친해지는 속도는 놀랄 정도로 빠르다.


어른들의 시간이 왔다. 덕담이 오고 갔다. 시아버지가 포문을 여셨다.


“진영이는 처음 봤을 때부터 남 같지가 않았어요. 똑똑하고 싹싹해서 우리 기훈이랑 아주 잘 살 거예요. 예쁜 딸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위야말로 오늘 처음 보는데도 서글서글하고 착해 보이네요. 멋있는 아들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아버지의 며느리 칭찬을 아빠가 능숙하게 리시브한다. 대화가 자연스럽다. 시어머니와 엄마는 지난주에 이사하면서 친해지셨다. 대화가 끊길 때면 순희 고모가 나서서 추임새를 넣어주신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색하지 않다. 상견례가 별거 아니구나 싶다. 시누이가 입을 떼기 전까지는 그랬다.


“결혼을 좀 서두른 감이 있죠. 우리 기훈이야 급할 거 없으니까.”


기훈 씨의 누나가 그의 등을 쓸어내리면서 말한다. 내 나이가 많다고 돌려서 표현하는 것이다. 엄마와 순희 고모가 그 말을 들었다. 분위기가 서늘해진다.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한다.


두 시간 동안의 저녁 식사가 끝났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신혼집으로 갔다. 하루 주무시고 갈 예정이다. 시아버지가 집을 둘러보고 잘 샀다고 하셨다.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뒤따라 도착한 시누이는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평가를 했다.


“천장에 손자국이 났네. 도배를 아주 날림으로 했어. 나는 이사할 때 도배 직접 했는데. 베란다 방충망은 왜 이렇게 성긴 걸로 했대. 날파리도 못 들어오는 촘촘한 걸로 하지. 신혼부부라고 아주 얕잡아봤네.”


시누이의 참견은 엄마의 잔소리와는 결이 달랐다. 처음 느껴보는 불편한 기분이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엄마와 나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나는 새언니에게 좋은 시누이였던가? 불현듯 새언니의 입장에서 나의 행동을 되돌아본다. 결혼 전까지 내 관심은 가족보다는 외부에 있었다. 집안의 대소사에 무심한 태도를 유지했다. 새언니와 직접 대화할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대로 잘 처신한 것 같다. 앞으로 나는 말을 아끼고 또 아낄 것이다.


*****

서초동에서 자고 아침에 신혼집으로 갔다. 전날 밤, 시부모님은 안방에서 주무시고 그는 작은 방에서 잤다. 손님으로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 새롭다.


“어머님, 아버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아주 잘 잤다. 암막 커튼 덕분에 빛도 안 들어오고, 침대도 좋고 이불도 푹신하더구나.”

“같은 이불로 한 채 사 드릴게요.”


점심에는 예식장 시식이 예약되어 있다. 시부모님이 서울에 오신 목적은 상견례지만, 신혼집과 예식장에 대한 호기심도 풀어드리고 싶었다. 1타 3 피다.


“기훈이 혼자 두지 말고 너도 들어오지 그러니?”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있을 때였다. 뜨끔하다. 지난 주말부터 사실상 같이 지내고 있다. 시부모님이 내려가시면 짐을 옮길 생각이었다.


“내일 이사할까?”

그가 어머니의 질문을 가로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대답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눈치가 없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니? 시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나는 어색하게 커피잔을 휘휘 저었다.


*****

신혼집에서 예식장까지는 차로 10분이 안 걸린다. 깁스하신 시어머니는 상담실에 앉아 계시고, 우리는 시아버지와 홀 투어를 했다. 시아버지가 예식장의 크기와 분위기, 시설에 대체로 만족하신다. 상담실장이 시어머니와 나를 모녀지간으로 착각한다. 그와 내가 닮았고, 그가 시어머니를 닮았으니 맞는 말이다. 모녀 같다는 말에 시어머니가 좋아하신다.


3층 피로연장의 특별실에서 시식을 했다. 모든 옵션이 추가된 형태의 상차림이다. 전복 갈비탕에 갈비찜, 깐쇼새우, 보쌈, 전복, 회, 삼색 떡, 각종 반찬이 한상 차려졌다.


“회는 추가해야 해.”

시아버지가 회는 꼭 있어야 한다고 하신다. 상담실에 가서 빨리 주문하라고 하신다. 회는 기본 상차림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협상 전문가인 엄마가 식대를 6천 원 깎았는데, 시아버지가 한 접시에 3천 원 하는 회를 추가하자고 하신다. 난감하다. 천천히 결정하자고 말씀드린다.


시부모님을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배웅해드렸다. 주차장에서 버스 승차장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시아버지와 그가 번갈아가며 어머니를 업는다. 그가 어머니를 업은 모습을 보는 기분이 묘하다. 나는 아직 그에게 업혀본 적이 없다. 나중에 나도 업어달라고 해야겠다.


“어머니, 의논드릴 거 있으면 전화할게요.”

“그래, 통화하자.”

시부모님을 배웅해드리고 차로 돌아온다. 그와 눈빛을 교환한다.


“자, 이사를 시작해볼까?”

우리는 서초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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