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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Feb 07. 2019

서른여덟, 6개월 만에 결혼하다 #16

21년 만의 방 탈출

나는 캥거루족이다. 엄마 집에서 38년간 성실하게 얹혀 살았다. 대학도 회사도 가까웠다. 서울의 집값은 비쌌고, 독립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은 엄마의 소유였으므로, 내가 집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거실의 가구 배치라든지, 주방의 집기 위치는 엄마가 결정했다. 냉장고 안의 음식은 자리를 자주 옮겼다. 요리하려고 마음먹었다가 재료를 못 찾아 포기하곤 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은 네 평 남짓한 방이 전부였다. 새 옷을 사려면 안 입는 옷을 버려야 했다. 다 읽은 책은 버리거나 중고서점에 팔았다. 꼭 필요한 만큼의 물건만 가졌다. 그래도 물건들이 쌓여갔다. 몸은 성인이 되었는데 아이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방을 둘러보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쓴 방을 21년 만에 떠난다. 쇼생크 탈출만큼 오래 걸렸다. 서른 살 때부터 지역 인터넷 계약을 일 년씩 연장했다.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집을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방이 아니라 집이 생겼다.


내 방의 가구는 침대와 옷장, 책상이 전부다. 다 버리기로 했다. 옷과 신발, 화장품, 가방을 상자에 정리한다. 책은 아끼는 것들만 챙긴다.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은 상자가 눈에 띈다. 먼지가 쌓여있다. 일단 가지고 가기로 한다. 친정과 신혼집이 가까워서 이사는 금방 끝났다. 신혼집 거실에 되는대로 짐을 던져두었다. 서초동에서 마지막 짐을 들고나오면서 엄마의 배웅을 받았다.


“잘 살아야 한다. 싸우더라도 하루 안에 화해하고.”

“자주 올게. 엄마도 놀러 와.”


엄마와는 친구처럼 자매처럼 지냈다. 좋을 때도 많았지만, 투덕거리고 싸우기도 했다. 주로 결혼 문제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엄마는 나를 오래된 가구 취급했다. 몇 년 더 있다가는 재활용 스티커가 붙여져 배출될지도 몰랐다. 나의 출가를 엄마가 마냥 좋아할 줄 알았다. 현관 앞에 선 엄마의 얼굴에 서운함이 비쳤다. 고작 지하철로 한 정거장, 버스로 10분 거리다. 내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가 글썽거리기 전에 집에서 씩씩하게 나왔다.


*****

“우리 이제 평생 같이 사는 거야?”

“평생은 좀 그렇고, 60년만 같이 살자.”

그의 유머가 늘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기쁨의 강강술래를 했다. 집이 생겼다. 그는 자취방을 실소유자인 곰팡이에게 양도했고, 나는 친정에서 방을 뺐다. 2년마다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진짜 우리 집이다. 앞으로 그와 나, 집 이렇게 셋이 살아갈 것이다.


“작년에 할머니 묘를 이장했어. 고모 꿈에 할머니가 나와서 춥다고 했대. 이장하는 날 원래는 사촌 형이 가야했는데 내가 내려갔어. 희한하게 내려가고 싶더라고. 할머니 무덤을 파보니까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어. 깜짝 놀랐지. 그때 이후로 할머니가 나를 돌봐주시는 것 같아. 눅눅한 자취방에서 햇볕 드는 이 집으로 이사 온 거 보면 그래. 순희 고모도 원래는 사촌 형 소개해주려고 했대.”


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어쩌면 나는 그의 사촌 형과 선을 봤을 것이고, 그와는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인연은 정말 있는 것일까? 지금도 조상님이 내려다보고 계실지 모른다.


가구와 전자제품은 거의 들여놓은 상태였다. 혼수는 베스트샵에 가서 엄마와 한 번에 골랐다. 여기저기 돌아다닐 시간이 없었다. 지난 2주간 택배를 받는 게 주요 일과였다. 아침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택배였다. 냉장고와 텔레비전이 들어오는 날에는 오후 반차를 냈다.


안방에는 침대와 벽걸이 텔레비전을 설치했다. 그와 함께 이 방에서 예능과 드라마, 영화를 두루 섭렵할 것이다. 그가 쓰던 텔레비전은 거실에 설치했다. 야구와 축구는 거실에서 보기로 잠정 합의했다. 부엌방에는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를 설치했다. 3 단장에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에어 프라이어, 토스터를 칸칸이 두었다. 요리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졌다. 나는 이제 요리 꿈나무다.


베란다에는 세탁기를 설치했다. 빨래는 그의 몫이다. 에어컨도 방마다 설치했다. 친정 내 방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언제 독립할지 몰라 몇 년째 미뤘다.


큰 가전제품 외에도 사야 할 물건은 많다. 집에 당연하게 있던 것들, 볼펜이라든가 스카치테이프, 분무기, 옷걸이, 슬리퍼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사야 한다. 영수증 수집가가 된 기분이다.


옷 정리를 시작했다. 안방의 붙박이장이 네 칸으로 나뉘어 있다. 내 옷을 걸다 보니 자리가 부족하다. 그의 옷을 한 칸에 넣고, 내가 세 칸을 쓰기로 한다. 큰 불만은 없는 눈치다. 패션에 관심이 없는 남편에게 가산점을 준다. 옷과 가방을 수납하고 컴퓨터를 설치하니 짐 정리가 대충 끝났다. 일요일 오후 3시. 나른한 시간이다. 미뤄둔 상자 하나만 남았다.


“이 상자는 나 혼자 정리할게. 낮잠 좀 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안방에 들어간다.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 침대와 하나가 된다. 2분 안에 잠든다. 볼 때마다 신기한 개인기다.


이제 작은 방에는 나와 상자, 둘뿐이다. 냉장고의 오래된 검은 봉지처럼 그 상자가 무섭다. 뭐가 나올지 모른다. 그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해치워야 한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은 종이로 된 것들이 채우고 있다. 초등학교 때 쓴 교환일기, 매년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 롤링 페이퍼, 오래된 청첩장 같은 것들이다.


곧 두려움의 정체를 찾았다. 예전 남자 친구의 사진과 편지다. 나의 이십 대가 거기에 있었다. 그때는 사랑이 중요했다. 나를 울리고 웃긴 건 팔 할이 연애였다. 십수 년도 더 된 사진들 앞에서 추억을 더듬는다. 젊음이 그립긴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사진과 편지를 아직까지 가지고 있던 건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사진과 편지를 재활용 봉투에 쓸어 담는다. 나의 한 시절을 미련없이 보내준다.


결혼까지 한 달 남았다. 토익 단기 속성보다, 수능 100일보다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국가대표의 합숙훈련처럼 각오를 단단히 한다.


우리는 잘 해낼 것이다, 1년을 준비한 커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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