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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Oct 25. 2019

#10 야구 접대 (Feat. 남편)

호주 파트너인 매튜는 한국 야구 팬이다. 잠실에 LG 트윈스 경기를 보러 왔다가 한국 친구의 추천으로 우리 매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메뉴 구성과 맛, 매장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 본사에 연락했고, 우리는 정식으로 파트너가 되었다. 한국 야구를 발판 삼아 해외 진출을 하게 된 셈이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LG 트윈스의 팬이 되었다.


호주 출장을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LG 트윈스가 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3년 만의 기회라며 잔뜩 흥분한 매튜가 카톡을 보냈다.


매튜: 준 플레이오프 표는 구하기 힘들겠지?

나: 금세 매진된다던데… 그래도 열심히 알아보면 구할 수 있을걸?

매튜: 그럼 일단 비행기 표 끊을까?

나: 그래, 야구 표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거야. 언제든 환영이야.


LG 트윈스 경기는 이번 주 일요일부터 시작이고, 연락이 온 건 금요일이었다. 매튜는 여섯 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다.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진짜로 오진 못할 거라는 생각에 립 서비스를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그날 저녁, 매튜에게 카톡이 왔다.


매튜: 나 한국 가는 비행기 표 끊었어. 일요일 아침에 도착해.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나는 매튜에게 진 빚이 있었다. 지난 8월에 호주 출장을 갔을 때, 매튜가 빌려준 차를 남편이 주차하다가 긁었다. 견적서가 나오면 보내달라고 했는데, 매튜가 괜찮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한국에 오면 숙식을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다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나: 호텔 예약 안 했으면 우리 집에서 잘래? 방이 하나 남아.

매튜: 음... 폐 끼치고 싶지 않은데...

나: 화장실이 한 개고, 침대가 없어서 불편할 수도 있어. 괜찮겠어?

매튜: 상관없어. 그럼 너희 집에서 묵을게. 진짜 고마워.

매튜가 나의 호의를 받아들인다. 서둘러 남편에게 연락한다.

나: 매튜가 한국에 온대. 우리 집에서 자라고 했는데 괜찮지?

남편: 응, 지난번에 그러기로 했잖아.

나: 이해해 줘서 고마워. 그럼 야구 티켓 좀 구해줄래? 차 사고로 진 빚을 숙식 제공과 야구표로 갚는 거야. 잊지 마, 우린 볼보의 노예야.

남편: 알았어, 최선을 다해볼게.


일요일 경기 24시간 전, 남편이 취소표 2개를 손에 넣었다. 남은 건 다음 주 네 번의 경기다. 남편은 며칠간 티켓팅에 매진했고, 경기표를 차례대로 손에 넣었다. 본인이 해내고도 믿기지 않아 했다. 간절하면 통한다는 뜻에서 우리는 이를 ‘볼보 스피릿(Volvo Spirit)’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일요일 새벽, 인천 공항으로 매튜를 마중 나간다. 손수 제작한 공항 피켓을 들고 기다린다. VIP 파트너를 위한 특급 서비스다. 16시간을 날아온 매튜는 지쳐 보였다. 오늘 경기는 오후 2시 고척 스카이돔이다. 매장 근무가 있어서 남편에게 매튜의 에스코트를 부탁했다. 남편은 영문과 출신이고, 야구와 맥주를 사랑한다. 야구 접대에 있어서 나보다 적임자다. 이날 LG는 연장전까지 갔지만 아쉽게 졌다. 매튜의 슬픈 마음을 치맥으로 달래주었다.


월요일 아침, 간단히 아침상을 차려주고 출근한다. 시부모님 외에 방을 내준 첫 손님이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된 것처럼 재미있다. 이날 저녁 경기표는 한 장밖에 못 구해서 매튜는 혼관을 했다. 안타깝게 LG가 또 졌고, 매튜는 처진 어깨로 귀가했다. 호주에서 날아온 팬을 봐서라도 내일은 LG가 꼭 이겼으면 좋겠다.


수요일이다. 어제 오후, 남편이 좋은 소식을 전했다. 처음에 구한 표는 상대팀 좌석이었는데, LG 좌석으로 새로 구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매튜가 선호하는 응원석 앞자리다. 남편은 호주에서의 실수를 차곡차곡 만회하고 있었다. 이날은 우주의 기운이 LG를 도왔다. LG가 승전고를 울리자 매튜가 우리 셋의 단톡방에 기쁨의 이모티콘을 날렸다. 그날 밤 우리는 술집에서 한 번, 집에서 두 번 LG의 승리를 축하했다. ‘무적 LG’라는 빨간 글씨가 새겨진 노란 손수건을 목에 건 채로.


LG의 네 번째 경기 날이다. 준 플레이오프는 5전 3승 제다. 오늘 LG가 이겨야 토요일에 5차전을 한다. 토요일 경기는 세 장의 티켓을 구해놨다. 하지만 LG는 시즌 3위인 상대팀의 기세를 넘어서지 못했다. LG가 역전패를 당하자 매튜가 자조 섞인 문자를 보낸다.


- 너무 슬퍼. 이번 주 토요일에 한가해졌어, 하하.


새로운 숙제다. 매튜의 토요일을 채워줄 플랜 B를 짜고, 가족 총동원령을 내린다. 엄마까지 합세해서 인천으로 관광을 간다. 차이나타운의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예스러운 흑백 사진을 매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월미도 크루즈까지 알차게 타고, 서울로 돌아온다. 저녁 식사에는 대표님도 합류한다. 이만하면 손님 대접을 성의껏 한 것 같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집에서 술자리를 이어간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카스를 대방출하자 매튜가 작정한 듯이 맥주를 마신다. ‘한 병 더, 한 병 더’를 무서운 기세로 외친다. 사람의 몸에 맥주가 저렇게까지 들어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마신다. 인체의 신비에 혀를 내둘렀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다음 날 문제가 생겼다.


일요일 오후, 영화 관람이 매튜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주차장에 간 사이에 다가오는 매튜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저기... 있잖아... 작은 문제가 생겼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혹시 비행기가 연착돼서 며칠 더 머물러야 한다는 걸까?

“내가 매트리스에 아이처럼 실수를 했어.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만...”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는 법이다. 매튜는 4리터가 넘는 맥주를 마셨고, 그 많은 양을 담아내기에 그의 몸은 한계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매튜를 저녁 먹을 식당 근처에 먼저 내려주었다. 집에 들러 사건 현장을 파악하고 수습에 나섰다. 제법 비싸게 주고 산 라텍스 매트리스가 푹 젖어 있다. 재활용이 어려워 보인다. 매트리스를 들추니 방바닥이 흥건하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남편과 매트리스를 테이프로 칭칭 감아 지하방에 내려다 놓는다. 덮는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방바닥을 걸레질한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캐리어를 가지러 다시 들를 매튜를 위한 배려다.


늦은 밤, 매튜를 인천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집에 오니 밤 12시다. 남편과 고생했다며 서로를 칭찬한다.

“이걸로 볼보 건은 완전히 비긴 거지?”

“우리가 한 점 앞선 거 같은데?”

손님이 오는 건 반갑고, 가는 건 더 반갑다.


후일담이지만, 그게 매튜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매튜는 동업자와 결별했다. 매장 오픈 과정에서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것 같았다. 소스 수입, 인테리어, 직원 채용 등의 거의 모든 실무를 매튜가 담당했고, 마크는 주방 담당이었는데 계속 삐걱거렸다. 매튜는 퇴사와 동시에 이혼했다.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혼자 왔고, 멜버른에 매장을 오픈했을 때도 그의 아내는 오지 않았다.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한 매튜는 결혼 생활에 대해 종종 회의적인 발언을 했고, 우리 부부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매튜의 마지막 서울 방문은 어쩌면 이런 갈등으로부터의 도피였을지 모른다. 그의 새 출발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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