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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Oct 18. 2019

#7 시어머니와의 2박 3일

“이번 생일에 계획 있니?”

“아니요. 기훈 씨랑 저녁 같이 먹기로 한 것 말고는 계획 없어요.”

“우리 며느리 첫 생일 챙겨주러 서울에 가야겠네.”


시어머니는 3주 전에 형님네 이사 때문에 올라오셨다. 그다음 주에는 어버이날이라 시아버지와 함께 올라오셨다. 그리고 2주 만에 다시 올라오신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나니 생일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5월은 이렇게 가정의 달이 되었다.


금요일 저녁, 시어머니와 남편을 만나 양꼬치 집에 간다. 남편과 자주 가는 곳이다. 양꼬치와 지삼선에 칭다오 맥주를 시킨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입에 안 맞으시는 것 같다. 생일이라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골랐는데,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소고깃집을 갈 걸 그랬나 싶다.


시어머니가 주얼리 숍에 가자고 하신다. 액세서리를 자주 착용하지 않는다고 사양했지만, 귀걸이와 목걸이 세트를 사주신다고 한다. 시어머니를 설득해서 귀걸이만 산다. 그걸로 성에 안 차셨는지, 두툼한 봉투를 건네주신다.


“결혼할 때 해준 게 없어서 첫 생일은 꼭 챙겨주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결혼 첫 해에는 모든 게 처음이 된다. 시아버지가 전화하시고, 형님이 문자로 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내주신다. 모두 감사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부모님의 생신에 대한 부담이 생긴다.

토요일에는 시어머니와 엄마, 순희 고모님을 모시고 한국민속촌에 갔다. 시어머니만 모시고 주말을 보내기에는 어색한 감이 있다. 겸사겸사 양가 어머니에게 동시에 효도를 한다.

일요일에는 두 어머니를 모시고 강화도에 간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엄마와 달리, 시어머니는 가본 데가 많지 않으시다. 좋은 경치를 보여드리고, 좋은 것을 함께 먹고 싶은 마음에 하루 더 계시라고 했다. 간장게장을 먹고, 보문사에 간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절벽 위의 부처를 보러 올라간다.

“올해에는 좋은 소식 듣게 해 주세요.”

양가 어머니의 소원이 일치한다. 우리는 못 들은 척 딴청 부린다.


하산을 하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휴대폰 진동이 온 것처럼 계속 떨린다. 나는 조수석에서 널부러졌다. 서울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다. 며칠 뒤면 형님의 생일이다. 대형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본다. 형님네 보낼 생일 음식을 골고루 산다. 즐겁게 장을 보고, 지하 주차장에 내려간다. 나는 주차 정산을 하고, 남편은 그사이 트렁크에 짐을 싣는다. 이만하면 별문제 없이 두 어머니와 주말을 보냈다.

“나 졸려.”


잠 많은 남편이 몰래 속삭인다. 주말 내내 일찍 일어나고, 낮잠도 못 자서 피곤해 보인다. 일정을 서둘러 마무리해야 한다.

“우리 산 거 10만 원 안 넘니?”
시어머니가 갑자기 물어보신다.


“포스터 보니까 10만 원 넘으면 밀폐용기를 준대. 얼른 가서 받아와라.”

계산 직후에 알았더라면 바꿔왔겠지만, 지금은 지하주차장이다. 사은품을 받으려면 엘리베이터를 다시 타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3~5분을 기다려야 잡힌다. 직원에게 고객 센터가 어딘지 묻고, 번호표를 뽑아서 기다려야 한다. 10만 원에 대한 사은품이면 액수로는 5,000원 정도일 것이다. 그 사이에 정산 시간이 초과되어 주차비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운전자인 남편이 피곤해한다. 주말 내내 운전을 시킨 게 미안하다. 나도 등산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몸이 이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어머니, 밀폐용기는 저희 집에도 많아요. 그냥 안 받아갈래요.”
“안 받아 간다고? 여기 서 있을 테니까 얼른 다녀와라.”


시어머니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나는 졸지에 알뜰하지 못한 며느리가 된다. 공교롭게도 이 대화는 남편도, 엄마도 듣지 못했다. 시어머니와 나는 차 밖에 서서 대화를 한다.


사은품을 가져오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시어머니가 서 계신다. 약 5초 정도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나는 조수석 문을 슬며시 여는 것으로 내 의지를 나타낸다. 잠시 후 시어머니가 뒷좌석에 앉으신다.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다. 형님네 아파트까지 묵묵히 간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피곤하고 힘든 주말이었다. 우리의 일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잠실새내역에 회사 차를 반납하고, 사당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와야 한다. 집에 오면 밤 9시다.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면 어떨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래도 나는 사은품에 미련이 없다. 시어머니를 존중하지만 100% 맞춰드리기는 힘들다.


‘락앤락 사건’은 며느리로서의 첫 번째 소심한 반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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