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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Oct 02. 2019

#6 로또에 당첨되다

남편은 매주 로또를 산다. 싱글일 때부터의 습관이다. 추첨은 토요일 밤이지만, 일요일까지 당첨번호를 확인하지 않는다. 월요일 출근길에 확인해야 열심히 일할 마음이 든다고 한다. 월요병을 이겨내는 신박한 방법이다. 로또 구매 비용은 일주일에 3,000원이다. 한 달로 치면 12,000원, 일 년에 15만 원 정도다. 그의 소박한 투자를 응원한다.


“로또 1등 되면 뭐할까?”

“은행 대출금 갚고, 이사하자. 양가 부모님들께 집 한 채씩 해드리고, 차도 사자.”

“나 봐 둔 차 있는데, 헤헤.”

“근데 1등은 좀 겁난다. 2등은 얼마야?”

“3~4천만 원 정도 될 걸?”

“오... 노려볼만하다.”


최근에 무당의 굿 비용 반환 소송에 대한 판결을 접했다. 무속 행위는 마음의 위안이나 평정을 주므로 사기가 아니라고 한다. 무속 신앙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로또는 우리에게 상상의 자유를 준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희박하다. 남편도 알고 나도 안다. 안 될 줄 알면서 즐긴다. 3천 원의 행복이다.


- 여보, 놀라지 마. 나 로또 당첨됐어.

- 헉... 진짜? 몇 등?

- 4등! 오만 원! 헤헤헤헤.


겨울 끝자락의 어느 월요일, 그가 로또 당첨 소식을 알린다. 봄이 온다는 소식처럼 기쁘고 신기하다. 5등이면 남편은 당첨금을 다시 로또로 바꿨을 것이다. 3등이면 2등이 아니라서 아쉬웠을 것이다. 4등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당한 행운이다.


“퇴근하고 데이트할래? 내가 저녁 살게, 헤헤.”


우리 집 통장은 내가 관리한다. 남편은 매달 용돈을 받아서 쓴다. 당첨금은 나 몰래 비자금으로 쓸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당첨 사실을 공개하고, 나에게 쓰겠다고 한다. 남편의 투명한 경제관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결혼할 때 회사 동료에게 따로 받은 봉투를 나에게 주었다. 그의 행동에 큰 신뢰를 느꼈다. 나는 봉투에 든 10만 원을 그에게 다시 주었다.


저녁 7시에 강남역에서 만난다. 나를 기다리는 그를 보니 두근거린다. 집이 아니라 밖에서 만나니 연애하는 기분이다. 남편과 커리를 먹으러 간다. 그가 미리 맛집을 찾아두었다. 커플 세트를 주문하니 탄두리 치킨과 커리, 플레인 난과 라씨가 나온다. 사진을 찍어서 SNS에 ‘로또 당첨 기념 저녁 식사’라고 올린다. 이런 건 자랑해야 한다. 널리 널리 알려야 한다. 남편이 현금으로 계산한다. 5만원 중 36,000원을 지출한다. 강남역 지하상가를 걷다가 잠옷 가게에 시선이 멈춘다. 결혼을 하니 외출복보다 실내복에 관심이 간다. 엄마와 살 때는 늘어진 티셔츠를 입었지만, 이제는 집에서 입는 옷에도 신경이 쓰인다. 두 개에 만원인 회색 바지를 산다. 커플 잠옷이 생겼다.


집 근처 과일 가게에서 딸기를 세일한다. 한 팩에 4,000원이다. 남편을 가만히 쳐다본다. 그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낸다. 딸기처럼 달콤했던 오늘 하루가 끝난다. 럭키 데이다.


<에필로그>

2월 마지막 주의 당첨 이후로 남편은 매주 성실하게 낙첨 중이다. 어떤 주는 당첨 숫자가 한 개도 안 나온다. 아무래도 행운을 땡겨써서 그런 것 같다.


남편은 용인에 땅이 있다. 용인시 기흥구의 어느 산속 26제곱미터(약 10평)다. 이 산이 개발되면 열 배로 뛸 거라고 한다. 개발될 때까지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로또 1등 당첨보다 이쪽이 빠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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