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첫 명절이다. 설 전날에 SRT를 타고 대전에 내려갔다. 남편이 예매 전쟁에서 승리했다. 지하철을 타는 기분으로 가뿐하게 대전에 도착했다. 시가에는 시누이네 가족이 하루 먼저 내려와 있다. 다 같이 바지락 칼국수집에서 점심을 먹고, 시누이네 가족이 떠난다. 스치듯 안녕이다.
시아버지는 둘째 아들이다. 차례는 큰집에서 지내고, 우리는 설날 아침에 큰집에 간다. 음식 준비는 큰어머니가 하신다고 했다. 그런데 시가에 도착하니 식탁 위에 재료가 쌓여 있다.
“새 사람이 들어오면 기름 냄새가 나야 한다고 하더라. 고추전 조금만 하자.”
“네, 어머님.”
시아버지는 안방에서 주무시고, 남편과 나, 시어머니 셋이서 고추전을 한다. 잘게 저민 돼지고기와 고추 한 봉지, 밀가루, 달걀을 식탁에 놓는다. 고추를 반으로 잘라 고추씨를 뺀다. 저민 돼지고기를 고추 안에 채운다. 밀가루와 달걀옷을 묻혀 전을 부친다. 한 가지 메뉴라 만만하게 봤는데 오래 걸린다. 슬슬 어깨가 아파온다. 남은 재료를 흘끗 보니 아직도 많다.
시아버지가 안방에서 나오신다.
“배고프다, 밥 먹자. 한우 좀 구워 봐라.”
“이것만 다 하고요.”
시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아니 언제부터 음식을 했다고 갑자기 고추전을 한대.”
시아버지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신다.
나와 남편이 주방 초보라 그런지, 아니면 재료가 많아서인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시아버지가 안방에서 다시 나오신다.
“배고프다, 빨리 고기 좀 구워라.”
“다 됐어요.”
시아버지가 배고프시다는 말에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느긋하시다. 마지막 고추전까지 다 하고, 식탁을 정리한 후에 고기를 굽기 시작하신다. 고기 굽는 냄새에 시아버지가 나오신다.
“며늘아, 소주 좀 따라봐라.”
“네, 아버님.”
“사부인이 보내준 한우가 비싼 건가 보다. 아주 맛있구나. 한 점 더 구워라.”
엄마의 센스 있는 선물 덕분에 분위기가 좋아진다. 금세 소주 한 병을 드신다. 시아버지는 주사가 없다. 술을 드시면 방에 들어가서 주무신다. 남편이 시아버지를 닮은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가풍이다. 오후 9시에 시가의 불이 꺼진다.
설 당일 새벽 5시, 남편과 목욕용품을 챙겨서 유성 온천에 간다. 대전에서 유명한 온천이다. 시부모님이 온천 티켓 두 장을 주셔서 남편과 씻고 오기로 했다. 7시까지 돌아와야 해서 느긋하게 즐길 시간은 없다.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한다. 다시 차를 타고 시가에 돌아온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 빨리 출발하자.”
시가에서 큰집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큰집에 도착하니 우리가 제일 늦었다. 거실에는 커다란 상이 펼쳐져 있다. 나는 시어머니를 따라 부엌에 들어간다. 쟁반을 들고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차례가 끝났다. 다 같이 떡국을 먹고, 산에 성묘를 하러 간다. 시아버지가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신다.
“저기 바다가 보이지? 이 터가 배산임수야. 명당이지. 요 자리에 너희 시어머니랑 내가 묻힐 거고, 저 아래에 기훈이랑 진영이가 묻힐 거다. 가족 비석에 며느리 이름도 얼른 추가해야 하는데.”
나는 잠시 멍해졌다. 내가 묻히게 될 자리라니… 나는 이제 죽으면 김 씨 가문의 선산에 남편과 나란히 묻히는구나. 기분이 이상해진다. 성묘를 하고 다시 시가로 돌아왔다. 시골길이라 도로가 구불거려 속이 울렁거린다.
“몇 시 기차라고?”
“오후 3시 기차입니다. 자리가 없어서 입석이에요.”
“하루 더 안 자고 가니?”
“저녁에 장인, 장모님을 봬야 해서요.”
“미리 보고 온 거 아니었어?”
“……”
시아버지는 우리가 일찍 간다고 섭섭해하셨다. 나는 시아버지에게 구구절절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명절 앞뒤로는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서 엄마와 내가 매장에 나가야 한다. 매장은 명절 전날과 당일, 이틀만 문을 닫는다. 엄마와 아빠는 명절 전날에 시골에 내려가시니, 찾아 뵐 수 있는 시간은 명절 당일 저녁밖에 없다. 시부모님에게 서운함을 안겨드린 채, 우리는 SRT를 타고 서울에 갔다. 집에 짐만 던져두고, 부랴부랴 친정으로 갔다.
“왜 이렇게 늦게 오니?”
어딜 가든 우리는 지각이다.
결혼 후의 명절은 네 개의 봉투와 두 배의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
시간은 빠듯하고, 우리의 마음은 내내 초조하다.
1박 2일의 일정이라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