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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선 Dec 31. 2020

은희경 <새의 선물>

보통내기와 작가의 차이점

보통내기와 작가의 차이점

 2016년 4월 12일 씀 


 글이라는 것은 종이 위에 짧은 선분들을 질서 있게 그려넣어 글자로 만들 줄만 알면 누구라도 쓸 수 있다. 그렇다면 보통내기와 작가와의 차이점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작가는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지만, 글을 잘 쓴다고 단편적으로만 그 재주를 평하기엔 좀 모자람이 있다. 작가는 독자가 자기 혼자만 꽁꽁 싸매두고 있었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감정들을,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살포시, 그러나 맞장구를 칠 수 있게끔 분명하게 책 속의 사람들을 통해 드러내준다. 이는 실로 엄청난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어느 개인의 가장된 특수성을 보편성의 영역으로 가차없이 끌어내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 은희경을 통해서 작가로서의 그 능력을 절감하였다. 거기다 시골에서 살았던 나의 어린 시절은 진희가 둘러싸인 환경과 너무나 닮았다. 1990년에 태어났으면서 <응답하라 시리즈>의 1988버전에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바로 그 내 어린 시절과. 아마 내가 내 친언니더러 이 책을 읽으라고 하면 친언니도 또 책 속의 진희가 곧 자기 자신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남들과는 구별되는 나만의 특별한 에피소드 몇 가지가 숱한 사람들이 그 나이 즈음에 겪는 흔한 것이라는 걸 깨닫는 건 솔직히 말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만, 장군이를 거침없이 곤경에 빠뜨리면서도 털끝만치의 동요도 없는 진희를 보고 있자니 나와는 비슷할 뿐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특별함을 어느 정도 방어할 구실이 생긴 느낌이다.

 


 진희는 여덟 살 때였던가 하지만 난 그림처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여덟살 때 아빠가 컴퓨터로 일지를 쓰시는 옆에 서서 비장하게 여쭤보았었다. "아빠, 사람은 죽으면 잠자는 것처럼 아무 생각도 못하고 기억도 못하고 그냥 깜깜해?" "그렇지." "사람은 다 죽어?" "언젠가는 다 죽지." "그럼 아빠도 죽어?" "아빠도 죽겠지." 그리고 그 다음, 울음을 참던 나는 결국 빵 울음을 터뜨리며 "난 죽기 싫어, 아빠도 죽지마...!!!"하면서 펑펑 울었다. 그 때 아빠가 나를 뭐라고 하면서 달래주셨었는 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성에 안 찼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이후로 한참 죽음을 의식하며 지냈으니까. 언젠가 죽게 될 것을 생각하면 잠도 다 달아나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는 동안 싹둑 잘린 기억을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떠올려지지 않았고 죽으면 이리 되겠지 싶어 우울했다. 어차피 죽어버리고 말 건데 죽기 전에 뭘 어쩔 수가 있을지 막막하면서 죽은 뒤에 잊혀질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내 꿈은 군인이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아예 내 죽음 자체를 의미있게 하겠다는 나름의 당찬 포부였다. 



 고등학교 때, 출근하시는 아빠 차를 타고 내려선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고 다리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학교가 나왔다. 나는 그 길을 걸어갈 때 신문 사설을 프린트해놨다가 읽으며 걷곤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아빠 차에서 내려 문을 탁 닫으면 마침 딱 사회 선생님이 걸어오고 있어서 함께 횡단보도부터 학교까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금에야 머리가 커버려서, 허석에게만은 여느 또래 꼬맹이와는 달리 취급받고 싶은 진희의 마음이나 둘러앉은 자리에서 열심히 ㅡ이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선동'을 해가며ㅡ 서울 학생 노릇을 해내는 허석의 마음이나 둘다 아직 어린 것만은 매한가지라는 것이 들여다보인다. 아마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와 그 선생님을 본다면, 진희와 마찬가지로 여느 또래 친구들과는 달리 취급받고 싶은 내 마음과 처음으로 발령 받은 시골 학교 등교길에서 매일 마주치는 기특한 모범생에게 성심껏 대해주려는 선생님의 마음이 모두 순수하게 들여다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땐 그저 어렸을 따름이라, 진희만큼 애틋한 것은 아니었다지만, 두근 거림을 느끼며 늘 기분 좋게 등교길을 걷곤 했다. 


 

 이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둔 이유는 첫 단락이 아닌 두번째 단락 때문이다. 저 두번째 단락이, <아홉살 인생><봄바람>처럼 비슷한 화자가 나오는 소설이나 <모순>처럼 비슷한 정서의 다른 소설들과 이 <새의 선물>을 구별지어 주는 아주 탁월하게 쓰인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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