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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선 Nov 04. 2020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

2019년 9월 3일 씀


 인간은 사랑에, 운명마저도 거역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속성으로 부여했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만 말하다가 문학을 사랑한다고 두 손 모아 말하게 된 것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를 읽고나서다. 2011년의 어느 여름날ㅡ ‘아름다운 라라여!’로 시작하는 길고 긴 감상문을 썼고, 지금까지 백번도 더 되풀이해 읽으며 거기 아로새겨진 감동을 어루만졌다. 그 글은 지쳐 누운 내 감각들을 올올이 깨워일으키는 주문과도 같은 글이다.

 이야기의 중간에, 주인공인 지바고가 아내 타냐와 정인 라라 중 누구에게로 향할까 갈등하다 끝내 라라가 있는 쪽으로 마두를 돌리는 부분이 나온다. 아이들과 함께 지바고가 곧 오리라 믿고 있을 타냐와, 차마 지바고가 올 것이라 작은 기대도 품지 못한 채로 눈물 짓고 있을 라라 가운데ㅡ 스물 두살이었던 그 때의 나는, 마음이 아프더라도 타냐 쪽으로 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일 지바고가 그랬다면 이 <닥터 지바고>는 노벨 문학상의 빛나는 이름을 거머쥘(정작 파스테르나크는 상을 거부해야만 했지만) 명작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의식이 무의식에 의해 자각하지 못하는 새에 지배받고 있으며, 몸이라는 것이 단지 호르몬의 작용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랑이란 건 그저 본능의 발현이나 생리적 현상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있잖아, 세상은 여러 층으로 되어있다. 그 꺼풀을 모조리 내던진 세상 속에서 식견을 뽐내며 발가벗고 있는 사람보다는, 그 아래 뭐가 있는지 알기에 더욱 신중히 고른 몇 겹 위의 세상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이 더 성숙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은, 신비로운 매력을 잃지 않도록 각별히 아껴주고픈, 내게 소중한 가치 중 하나다.   


/


 괴테 역시 이 소설을 쓸 때 25살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베르테르가 어째서 이다지도 갈피를 못 잡고 로테에 빠져 종횡무진하는가를 조금쯤 이해할 수 있다. 어릴 적의 사랑은 실은 조급증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그 마음에 공감하고, 또 누구나 자신만의 로테를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경우는 가히 광기에 가깝다고 하겠다.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하인을 보내고, 귀환한 하인을 통해 로테를 감지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발췌) 나도 뺨을 두 대나 얻어맞았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뻤다.

 다만 이 대목에서는 공감할 수 있었다. 어릴 적 나의 로테는 종종 어떤 고전의 대사를 인용하며 말했고, 내가 가끔 못 알아들어 눈만 깜빡이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영선이... 저런...”하며 웃는 얼굴로 힐끔거리곤 했다. 그럴 때면 난 겉으론 투정을 부렸어도 속으론 무척이나 기뻤다.

 평소 나는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이 대수롭지 않게 느끼도록 하면서 화제를 돌리거나 대화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에 매우 능숙했다. 때문에 로테에게 놀림을 받으면서도 도리어 존중 받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건 ‘이런 것도 몰라?’하는 비아냥이 아니라 ‘넌 이런 건 알아야지!’하는 가벼운 책망에 가까웠다. 로테의 박학다식함과 고상한 취향에 매료되어 있던 내게는, 그것이 칭찬만큼이나 기분 좋게 들렸었다.


/


 갓난 아기를 눕혀둘 때에는 속싸개라는 걸로 몸을 꽁꽁 싸매두어야 하는데, 그건 엄마 뱃속 좁은 공간에서 옴짝달싹 못하던 아기가 갑작스레 허공에서 자유로운 제 팔다리의 움직임에(아직 완전히 통제할 수 없어서) 겁을 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몸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야 우리는 사회적/법적으로 성인이 되기 전 애진작에 어엿한 성체가 된다. 좁은 골목에서 마주 걸어오는 사람과 부딪힐지 어떨지 미리 생각하고 어깨를 당겨 충돌 없이 완벽하게 지나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를 구성하는, 몸 이외의 것들의 모양을 감지하고 그 형태를 잘 가꾸며 다지는 일은, 시간과 공을 고스란히 들여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단순히 시간이 경과하는 것만 가지고는 불충분한 일이다. 때문에 제 몸을 온전히 가누지 못하는 관계로 오히려 속박에서 안정감을 찾는 갓난 아기처럼, 어떤 사람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 갇히는 것을 자발적으로 택하거나ㅡ그러나 베르테르는 귀족의 연회에 낄 수 없었다ㅡ 존재마저 뒤흔드는 강렬한 감정에 스스로를 통째로 떠맡겨버린다. 어쩌면 나 역시 한때 그랬었는지도.

 지금은 더 이상 나 자신의 균형을 맞추는 데 있어, 외부에서 꼭 맞는 쐐기를 찾아 고이거나 혹은 잘 드는 칼로 그럴싸한 모양이 되도록 어딘가 도려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고픈 아주 오래된 욕심을 완전히 폐기한 덕분이다. 비정형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지금은 모난 구석도 미워하지 않고 빠짐없이 안으로 잘 접어 넣으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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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뒷표지에는 이 책이 당대에 불러온 파란을 이야기하며 뭇 여성들이 로테처럼 사랑받기를 원했다고 쓰여있다. 그래? 하지만 파멸을 부를 정도의 격정은 두려운걸. 음 그렇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좀 신나는 기분으로 늘어놓아볼까ㅡ

- 소설 <죽음의 중지>(주제 사라마구) 2부, 죽음과 첼리스트의 사랑 이야기

- 영화 <뷰티풀 마인드>(론 하워드) 존 내쉬의 엉터리 고백과 알리샤의 화답, 그리고 다른 씬에서 알리샤의 대사 “I’m sorry, just give me a moment to redefine my girlish notion of romance.”

- 희곡 <닫힌 방>(사르트르), ‘나 자신인 채로 네가 되게 해줘.’

- 시 <옥수수>(서정주)

- 노래 <It’s Always You>(Chet Baker)
...


 (발췌) ... 그럴 때 나는 쏟아져 내려가는 계곡물 옆의 우거진 풀 속에 누워서 대지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댄다. 그러면 온갖 풀들이 새삼 신기하게 눈에 띈단 말야. 그리고 풀줄기 사이의 조그마한 세계에서 오글거리는 작은 곤충들의 모습, 그 자잘한 땅벌레와 날벌레들의 헤아릴 수 없이 신비로운 모습이 나의 가슴속을 파고든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따라 우리를 창조하신 전능한 분의 존재와, 우리를 영원한 환희 속에 떠돌게 하면서, 우리를 떠받들어주고 있는 절대 자비하신 분의 입김을 느낀다. ...

 이 부분 읽는데 내가 작년 연말에 들으러 갔던 베토벤 9번 교향곡, 특히 3악장을 듣던 중에 머릿 속에 융단처럼 펼쳐지던 영상과 너무나 비슷한 풍경이 묘사되어 놀랐다. 그 때 내가 썼던 감상은 이러했다.

 바이올린의 활이 소생하는 초록 줄기가 되어 지상에서 솟아난다. 겁에 질려있다가 신의 자애로운 은총을 실감하게 되는 인간. 흐르는 냇물 옆에 누운 인간은 돋아나는 만물의 생명력에서 신을 보고 환희를 느낀다.


 (발췌) 로테 “가장 겁이 많은 편이지만, 겉으로 대담한 체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려고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정말 용기가 생겼어요.”


 (발췌) 내 기분은 정말로 흐뭇하다. 내 마음은 인간의 솔직하고 허식 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손수 가꾼 배추를 식탁에 올리고, 그것을 이렇게 기분 좋게 맛볼 수 있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과 더불어 즐거웠던 하루하루, 배추를 심었던 아름다운 아침, 물을 주면서 나날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던 저녁, 이 모든 경험과 갖가지 추억들을 식사하는 그 한순간에 되새길 수 있다.


 (발췌) 나를 사랑한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된 이후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가 되었는지 모른다.


 (발췌) 나는 C백작이라는 사람과 알게 되었는데 날이 갈수록 더욱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넓은 시야와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해서 조금도 쌀쌀하지 않다. 그에게는 우정이나 애정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그분과 사귀어보면 누구나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분에게 심부름을 갔을 때, 그분은 내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통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는 달리 나와는 흉허물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나와 처음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것만으로도 알아차린 모양이다. 또한 내게 보여준 그의 솔직한 태도는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란다. 이 세상의 즐거움 가운데, 위대한 인물이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해 주는 것을 듣고 느끼는 것만큼 참답고 따뜻한 것도 없을 것이다.


 (발췌) 그분은 그뿐 아니라, 내 마음보다는 내 지성과 재능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내 마음만이 유일한 자랑거리이며, 오직 그것만이 모든 것의 원천, 즉 모든 힘과 행복과 불행의 원인이다. 아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


 베르테르의 사랑은,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를 떠오르게 하는 면이 있었다. 친구의 아내인 미치요에 대한 정열을 어쩌지 못하는 다이스케ㅡ다만 로테와는 다르게 미치요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ㅡ 역시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그걸 작가의 훌륭한 솜씨로 빚어내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된다. 나는 특히 저 ‘아들’이란 표현에서 숨막힐 듯이 감동했다.
 
 자연의 아들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의지의 인간이 될 것인가 하는 사이에서 다이스케는 번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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