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 얀 아데르 - 추락
현기증이란 무엇인가? 추락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튼튼한 난간이 갖춰진 전망대에서
우리는 왜 현기증을 느끼는 것일까? 현기증, 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그것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저지르고 싶었다. 지나간 칠 년을 단번에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현기증이었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극복할 수 없는 추락욕구.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
추락도 락(ROCK)일까?. 인간이 현기증을 느끼는 건 추락에 대한 욕망 때문일 거라고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설명한다. 그리고 바스 얀 아데르는 자신의 신체를 담보로 몸소 증명해 보인다. 영상 속 그는 한가로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암스테르담 운하 위를 산책하던 도중 돌연 하천으로 뛰어든다. 자석에 끌려들어 가듯이, 영적인 현상에 의해 몸이 낚아 채이듯이. 언뜻 보면 불나방이 불빛을 보고 뛰어드는 것 같지만 바스 얀 아데르의 추락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불나방은 자신의 운명을 모르고 뛰어들었으나, 그는 분명 자신의 운명을 알고 뛰어들었다. 다 젖어버릴 것을 알면서도 그는 왜 뛰어들었을까.
나는 장대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산 없이 나가 비를 맞고 싶은 충동이 인다. 산성비에 맞아 녹아내리거나, 그동안의 온갖 멍에를 씻어내고 싶은 걸까. 나도 모르는 내 충동은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내면의 불안감에 파도처럼 밀려든다.
독일 속담에 '한 번은 없던 것과 같다.(einmal ist keinmal )'라는 말이 있다. 인생은 한 번 뿐이고 리허설도 없다. 아니, 리허설이 바로 본무대인 게 인생인데. 왜 비가 오면 항상 젖지 않기 위한 경험만 강박적으로 선택하려 하는가. 나는 그 금기를 깨며 추락의 길로 가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그러나 현실의 나를 보면 지독히도 추락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담배도 피우고 싶고, 남의 것을 뺏어보고 싶고, 토할 때까지 과식하고 싶으며, 돈이라는 목적으로 점철된 가짜 사랑에도 내 삶을 빼앗겨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결과적으로는 이 모든 행동을 단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다.
죽게 전에는 꼭 추락해 보아야겠다. 추락도 락(ROCK)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