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뿐인인생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모순에 대하여
우리의 삶은 매일같이 요동치는 모순과 그에 따른 선택의 여정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만족 혹은 후회와 그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지면서 살아갑니다. 모순은 우리가 사랑할 때 많이 발견하곤 합니다. 예컨대,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지만 정작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나와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친절하면서도 불친절합니다. 애정 하면서 미워하기도 하지요. 예컨대 한 여성이 한 남성의 삶에 대한 자기 일에 대한 열정, 천진난만함에 이끌려 사랑하다가도 어느 순간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은 곧 바쁜 남자, 나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되고 천진난만함은 답답함으로 금세 바뀌어 버립니다. 그렇다고 미워하는 마음과 그로 인해 받은 상처들로 하여금 헤어지는 것을 상상하지만 막상 헤어지자니 함께한 시간과 추억들이 떠올라 힘들지만 참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곤 합니다.
여기 대비되는 여러 단어가 있습니다. 가벼움과 무거움, 진지함과 농담, 계획과 즉흥 등 대비되어 보이는 단어들은 단어 자체로만 봤을 때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을 수 있지만 삶에서 마주한 이 단어들은 경계선을 나누기 애매합니다. '나는 진지한 사람이야'라고 말해도 어느 순간에는 농담을 하고 있고,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도 어느 때에는 즉흥적인 결정을 하곤 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이러한 모순을 포착하는 작가입니다.
우리의 삶은 한번뿐이라 어떤 것이 맞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한번뿐인 인생' 뒤에는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말자'가 올 수도 있고, '최대한 많은 것을 이루자'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 둘 중 어떤 것이 옳은 삶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처럼. 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미묘하다. 둘 중에 무엇이 더 긍정적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시는 가벼운 사랑만을 추구하는 인물이고 테레사는 무게감 있고 깊은 사랑을 추구합니다. 서로의 아이러니에 끌려 이 둘은 만났지만 끊임없이 서로에게서 모순을 발견하며 스스로의 방향으로 흐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덧없이 가벼운지, 동시에 한없이 무겁고 중요한지 고찰하는 그의 작품들은 삶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밀란 쿤데라의 살아온 시기는 이념의 충돌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가 이토록 모순의 충돌을 바라보는 것은 그의 삶이 지나는 시대가 모순적인 시대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쿤데라가 태어난 체코의 역사를 살펴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소련에 간섭을 받았고, 1968년 사회주의에 대한 반발로 인한 혁명, 주권운동이 일어나 '프라하의 봄'을 맞았지만 소련은 이에 대해 제한적 주권론 (개별 국가의 주권도 사회주의 체제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을 내세우며 그해 여름 체코를 무력으로 제압하면서 민주화의 꿈은 짓밟히게 되었습니다. 프라하의 봄 당시 체코에서의 밀란 쿤데라의 존재감은 컸습니다. 이미 프라하 공연예술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고, 체코의 국민작가 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프라하의 봄에 누구보다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소련은 그의 공직을 박탈하고 소설, 연극 등을 모두 탄압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향을 등지고 결국,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1989년 벨벳형멱 이후 체코가 민주화된 후에도 프랑스에 머물렀습니다.)
삶의 1차적인 부분은 사랑과 삶, 죽음이지만 2차적인 부분 정치 문화 사회 역사가 1차적인 부분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밀란 쿤데라가 '정치와 이데올로기는 실존의 문제를 은폐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글을 마치며..
어려운 주제에 발을 담갔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다루기에는 제 역량으로는 부족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작가의 삶을 조명하려고 했습니다. 제 글 속에 생각의 간극이 크고 그 간극을 좁힐 재주가 부족해 급히 글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