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나라와 우서는 한 시절, 서로를 아껴주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고기 한 점도 더 먹이려고 서로의 접시에 담아주기에 바빴고, 서로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기꺼이 서로의 시간을 내주었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기 위해 각자의 집과 멀어져도 한참을 더 돌아갔고,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대화 주제를 마주치면, 행여라도 내 말이 상처가 될까 뾰족한 단어를 깎기 위해 수도 없이 말의 속도를 늦추며 단어를 골랐다. 그래도 서로의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라고 판단되면 두 손을 포개어 서로의 눈을 바라보거나 꼬옥 안아주며 이야기를 건넸다. 혹시라도 차가운 말이 서로의 체온을 떨어트려 감기라도 걸릴까 봐 걱정한 듯 말이다.
온 우주를 바쳐 사랑하던 그들이 이별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온전히 아껴주기 위해 외면하고 있던 사실들이 하나 둘 표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서로를 더 오랜 시간 사랑하기 위해, 몇 번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겹겹이 쌓아온 시간만큼 쌓아온 기억들이 뒤엉켜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차릴 수 없었다. 서로에게 매력으로 느껴졌던 장점이 서로를 외롭게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삶이라는 긴 사이클 중, 유독 피곤한 시절을 보내느라 서로에게 예민하게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달을 할퀴며 서로가 알아낸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모든 사물은 변하고 그에 맞춰 그들의 사랑도 변했다는 자연의 섭리였다.
외부의 전시 기획자들과 미팅을 하고 나오던 길, 나라의 스마트 워치의 알람이 날카롭게 울렸다. 아마 미팅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담당자가 보낸 메시지겠거니. 그러나 메시지의 내용은 뜻밖이었다. 워치의 작은 패널을 통해 분명히 읽었음에도 나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 깊숙이 숨어있던 휴대폰을 황급히 꺼내야만 했다.
"나라야,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이제는 우리가 함께하지 못할 것 같아. 생각해보고 연락해 줘."
늘 문제를 마주치면 한 발짝 물러나 상황을 살피던 그녀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칼을 뽑아 든 것이다. 며칠 째 연락이 잘 되지 않았던 참에 벌어진 일이다. 나라는 우서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느니 자신이 대신 상처를 받으려는 성격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나라는 우서가 이 문자를 보내기 위해 수 일의 밤과 수 백번의 수정을 거쳤을 모습이 선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서는 중대한 일이라면 늘 깔끔히 해내는 강단도 있었다. 분명 나라가 밉기도 했을 우서였지만 그녀는 원망 한 점 없이, 나라를 해칠 수 있는 말은 한 획도 드러내지 않았다.
상대방의 감정을 기민하게 읽어내던 나라는 사실 연락이 되지 않던 요 며칠, 이별을 짐작하고는 불안감에 몇 날 밤을 지새웠다. 드문드문 주고받는 전화와 문자 뒤에서 무뎌진 마음을 숨기고 미소지었던 우서는 더 이상 나라를 바보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쓰나미가 덮치기 전 대이동을 시작하는 동물 떼처럼 나라는 문자를 곱씹으며 열차를 여러 대가 지나갈 때까지 온 몸을 파르르 떨었다.